바닷가에서

회색갈피 2018. 2. 1. 20:29

 

       바닷가에서

 

 

세월이 비만해지도록 살아오면서

바닷가에 서면 아직도

사춘기 소년처럼

낭만에 젖어 들썩이곤 한다.

시퍼런 하늘과 바다가

서로 엉켜

수평선 위에

하나의 몸으로 누운 게

마냥 좋았지.

 

더러는

모래톱과 벼랑에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달려들어

제 몸을 짓이겨

허옇게 흰자위를 드러내고

무모한 모습으로 아우성치는 게

두렵기도 했지.

 

때론

바로 눕지 못하는 둔치까지

조약돌을 밀어 올려

좌르르 좌르르

울음 울 때

슴슴한 여백을

비상하는 파도의 비말로

채워 넣기도 했지.

 

혹은 두껍게 낀 해미 속을

기진하도록 걷다가

서서히 드러나는 속내가

수치스러워

온종일 흐릿한 시선으로

멀미를 하기도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