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소설 「모순」
모순(矛盾):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중국 초나라의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창은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는 창이라 하고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방패라 하여,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소설의 제목이 모순이듯이 내용도 삶의 모순에 대한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스물다섯 하고 팔 개월인 안진진이다.
진진에게는 결혼 6개월 후 나타난 폭력적 주사(酒邪)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가출을 반복하다가 5년째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남편을 대신해서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시장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양말이나 속옷을 팔아 힘겹게 살아가는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조차 구분하게 힘들었던 일란성 쌍둥이 이모, 어머니와 다르게 건실한 건축사 남편과 결혼해서 경제적으로도 풍요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 잘하는 딸과 아들을 둔 걱정이라고는 일도 없는 어머니가 부러워하는 이모가 있다. 모래시계의 최민수나 대부의 말론 브랜도 같은 조폭 두목이 우상인 남자 동생이 있다.
진진에게는 그녀와 결혼을 원하는 서로 대비되는 성격을 가진 김장우, 나영규라는 남자가 있다. 나영규는 계획적이고 치밀하며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가졌고, 김장우는 자신을 키워준 형을 무척 사랑하는 무계획하고 감성적인 작은 꽃들에 꽂힌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사진사다.
이모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는 이모를 겉으로 질투한다. 엄마가 동생을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모는 엄마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받지도 못하는 돈을 빌려주지만, 그걸 전혀 탓하지 않는 착한 성격인데 진진을 자식 못지않게 좋아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다.
동생 진모는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기울자 졸개들을 시켜 폭력을 행사해 살인미수로 감옥에 들어갔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는 간이고 쓸개도 다 빼놓고 피해자를 찾아가 어머니의 능력으로 마련할 수 있든 최대의 돈을 준비해(물론 그 돈은 이모가 빌려준 돈이다) 합의를 받아내 진모가 최소의 형량을 받게 한다. 젊어서는 생활비만 책임진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술에 취할 때마다 폭력을 당하면서도 아버지를 감싼다. 당하고, 뺏기고, 뒤처리하면서도 삶에 좌절하지 않는다. 아들이 살인미수로 구속되었을 때도 일본인을 상대로 돈을 벌어보려고 준비했던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자식을 위해 올인하며 삶의 투지를 불태운다. 어쩌면 어머니는 불행과 적대적 공존으로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안진진은 두 남자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다리기하며 누구도 쉽게 선택하지 못한 채 김장우는 가난하지만 가는 줄 같은 감성을 지닌 남자로 사랑과 연민을 가진 채, 나영규는 모든 것을 치밀하고 완벽하게 계획하며 데이트조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하는 주도면밀한 완벽함에 놀라고 그 완벽성 때문에 숨이 막히지만 밀어내지 못한 채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 진진이 여덟 살 때 어머니의 돈을 훔쳐 나누어 가지며 두 손이 자로 잰 듯 딱 맞을 때까지 비밀로 하자던 그 아버지가 가출한 지 5년이 되어 중풍과 치매를 가진 채 나타나지만 진진을 알아보지 못한다. 두 사람은 끝내 두 손이 딱 맞을 때 서로 맞추어보지 못하고 아버지는 쓰러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가족을 너무 사랑해서 그 특별한 사랑에 갇히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폐인이 된 사람이다.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모순이다.
책 끝부분에서 모순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무엇도 부러운 것이 없는 생활을 하는 이모가 진진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고는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거든.’
일반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채 너무 행복해서 그 넘치는 만족을 견디지 못하고, 언니처럼 남편, 자식, 가난 때문에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살아가는 언니의 삶을 부러워하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상에 지쳐 죽은 이모. 너무 행복하면 자살한다는 모순!
이모가 죽은 일년 후 진진은 결혼할 예정이다. 가난하지만 선하고,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그래서 마음이 더 가는 김장우가 아닌 너무 계획적이고 치밀한 일 처리 능력을 가져 정이 떨어지는 나영규를 선택한 모순!
소설의 첫 부분에서 진진이 이렇게 말했던 결론이 이것이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라고 부르짖었던 나의 다짐이 마침내 결혼이라는 실천의 단계 이른 것이다.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이모가 진진에게 가르쳐주었지만, 김장우의 손을 놓고 나영규를 선택하며 이렇게 말했다.
‘삶은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