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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용천사 꽃무릇그곳에 가면 2026. 9. 18. 20:13
9월 중순이면 산을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석산)을 만날 수 있다.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의 붉은 꽃무릇, 부안 내소사의 노란 꽃무릇을 만나보았다. 잎이 모두 진 줄기 끝에서 꽃망울을 강렬하게 터뜨리는데 수선화과의 다년생 식물이다.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어 일명 상사화라고도 하는데, 실제 상상화는 7~8월에 핀다. 상사화도 꽃무릇처럼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는 슬픈 꽃이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나와 여름이 오기 전에 지는데, 꽃무릇은 꽃이 지고 잎이 나와 추운 겨울을 견디는 특성이 있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해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상사화라고 부르는 듯하다. 꽃말 역시 이룰 수 없는 사랑, 슬픈 추억이다. 함평 용천사는 처음이었는데 절은 작고 아담했다. 9월 16일부터 꽃무릇 축제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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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과 그믐달새와 나무 2026. 9. 15. 16:51
며칠 전 새벽 산책길에 샛별과 그믐달이 나란히 떠 있는 모습과 만났다. 무더위가 물러난 새벽 동쪽 하늘은 서늘한 감정을 품은 채 정갈하고 고요한 푸른 빛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그 하늘에 오로지 그믐달과 샛별이 나란히 얼굴을 마주 보며 곧 닥쳐올 이별의 순간을 예감한 듯 창백한 낯빛이었다. 그믐달은 만월의 눈부신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을 아낌없이 비워낸, 한 가닥 은실처럼 가녀린 몸매로 금방이라도 사위어질 듯했고, 초저녁 서쪽에서 달려오는 동안 영롱한 뭇별들은 다 사라졌는데 샛별은 홀로 남아 반짝이는 모습이 세태에 휩쓸리지 않는 구도자처럼 초연하다. 그믐달과 샛별은 서로에게 위로와 희망 눈빛을 주고받으며 마지막 새벽을 빛내고 있었다. 여기에 소쩍새가 끼어들었다. 전설 속, 시어머니가 작은 솥에 밥을 짓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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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건반 위의 세레나데 2회)단편 2026. 9. 9. 11:53
가은과 나는 숨이 턱까지 차게 달려왔는데 출발한 배를 보자 맥이 풀리며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참 후 여객선 터미널로 돌아가 무위도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았다. “거그 가는 배가 오후에 한 번 더 있는디 요새 그 배를 수리허니라고 안 댕기는디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가은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낯빛이 변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배가 가지 않으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다시 서울로 되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내일 아침에라도 가서 섬이라도 구경하고 돌아와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혹시 몰라 김 과장에게 전화했다. 김 과장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서울 촌놈이 티를 내고 있구나. 좀 기다려 봐. 알아보고 전화할게.” 김 과장이 부탁한 물건을 사려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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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건반 위의 세레나데 1회〉단편 2026. 9. 7. 17:58
금요일 오후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아내와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좀 편안하고 간편하게 먹고 싶어 치킨을 시켰다. 종이상자를 열고 닭 다리를 아내 가은에게 내밀었다. “때깔이 좋네. 먹어봐.” 가은이 닭 다리를 크게 베어 물고 몇 번 씹더니 맥주 캔을 따고 고개를 뒤로 약간 젖힌 채 차가운 맥주를 급하게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고는 염려했던 대로 이마에 손을 댄 채 얼어버리기라도 한 듯 멈추었다. 한참이나 그런 자세를 하고 있다가 손을 내리며 기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하하하하하. 좀 천천히 마시지 뭐가 그리 급해서……” “의리라고는 약에 쓸려고 해도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사랑하는 아내가 머리에 쥐가 났는데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아하냐?” 아내는 내 등을 철썩 소리가 나게 때리며 말했다. “하나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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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더웠던 여름, 들꽃의 위로새와 나무 2026. 9. 4. 16:23
이번 여름은 하루, 하루 생활하는 게 지옥과도 같았다. 사람이 죽어서 죄를 지은 사람의 영혼이 간다는 지옥 중에 ‘대초열지옥이 있는데,’ 여기에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사견으로 남을 속임’의 사람이 가는 지옥이라고 하고, ‘맹렬한 불길과 용암 속에서 몸이 익고 타버림’라고 한다. (네이버 AI) 올여름이 지옥의 ‘대초열지옥’만큼은 아니겠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여름 중 가장 더위 날들이었다. 여행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냥 행동을 최소를 줄여 더위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새벽에 산책하는 것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5시에 일어나 봉화산 좁은 숲길을 걸으며 한낮의 더위는 생각하지 않고 숲, 바람, 새소리, 하늘, 구름, 동천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했다. 올해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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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슨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독서 2026. 9. 1. 17:30
‘나는 내 양심을 저버린 적이 없어. 나는 언제나 정의로운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물건을 팔면서 ‘이거 하나도 안 남아. 손해 보고 그냥 파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과 다름이 없는 신뢰성이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며 평소에는 한없이 정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가 자신과 관련된 일일 때는 옳지 않은 일일지라도 상황 논리를 말하며 정의가 아닌 불의로 선택하기도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가 되고 남이 하면 불륜이 되는’ 상황적 논리와 비슷할 것 같다. 이런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인간의 선과 악의 이중성에 대해서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 1886년 발표된 로버트 루이슨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 한 사람의 내면을 다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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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 4. 오림포스의 12신그리스 로마 신화 2026. 8. 27. 17:08
암흑의 카오스에서 태어난 가이아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결혼해서 크로노스를 낳고, 크로노스는 아버지와 싸워 이겨 왕이 되고,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는 10년 동안 크로노스와 티탄들과 싸워 승리한다. 전쟁을 하는 동안 티탄 신족이 오트리스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제우스와 형제들은 그 맞은편에 있는 그리스 최고의 높은 산인 올림포스산에 모여 진지를 구축한다. 제우스와 형제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는 제비를 뽑아 각각 하늘, 바다, 지하 세계로 영역을 나눴다. 이후 제우스의 자녀 신들인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테나 등이 올림포스로 모이게 된다. 제우스 - 최고신으로 신들의 왕으로 하늘, 벼락, 날씨를 다스리고 상징은 번개, 독수리, 올리브 나무이다. 헤라- 여신들의 여왕으로 결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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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의 소설 〈전락〉. 끌라망스의 ‘변종 나르시즘’독서 2026. 8. 23. 19:22
까뮈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싸르트와 함께 프랑스의 행동하는 지식으로 철학자, 사상가, 기자, 혁명가, 작가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가진 지성인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는 1957년 44살의 나이로 아홉 번째로 최연소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라고 한다. 까뮈의 소설 〈전락〉을 다시 꼼꼼히 읽었다. 처음 읽으면서 끌라망스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파리에서 화려한 생활을 접고 속죄판사가 되어 자신을 비판하고, 다른 사람도 비판하게 하여 또 다른 속죄판사를 만드는 건 바람직한 게 아닌가?’라고. 자신은 재판에서 늘 정의로웠고, 뇌물을 받지 않았고, 외압에도 굴하지 않았고, 기자들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았고, 공무원에게 아첨하지 않았고, 길거리에서 맹인이 길 건너는 것을 도와주었고, 행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