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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내들이 텔레비전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 가
관음증에라도 걸린 듯 집착하는 수요일 밤 10시.
마치 무림의 고수라도 된 듯이 무용담으로 뻥을 치며
침을 튀기는 군대 이야기,
직장과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지만 불을 본
나방처럼 늘 빠져드는 예쁜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
생에 한 번이라도 소유하고 싶은 삐가 번쩍한 외제차나
모터사이클에 대한 로망을 성취하는 이야기,
암호화폐, 주식, 부동산 투기로 벼락부자가 되는 이야기,
요즘 대한민국을 폭풍처럼 휩쓰는 트로트 경연이 열리는
것도 아닌 ‘나는 자연인이다’에 사내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뭘까?
점점 드세지는 여성의 기에 눌린 채 용기 있게
산으로 숨어버린 야성의 사내들에게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같이 살면 구름에라도 오를 것처럼 행복할 것 같아
온갖 추파와 애교를 떨며 맞은 아내가
삶에 희열이 아니라 구속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까?
직장에서 두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업무와 상사의
호통과 갑질에 한없이 작아진 채 자꾸만 왜소해지는
삶에 넌더리라도 난 것일까?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과 변화도 희망도 없는
도시인이 되어 점점 쪼그라드는 남근처럼 기력을 잃고
침몰해가는 비루한 존재에 대해 마지막 반격이라는
해 보고 싶은 걸까?
가장이라는 무거운 짊을 이제는 좀 내려놓고 수도하는
선승처럼 깊은 산에 파묻혀 살고 싶은 걸까?
일상이 반복되는 회색 도시에서 야성을 상실한
사내들은 지금 산으로 가는 것이 로망이라도 된 것일까?
게으르고 싶고
상사에게 지시받고 싶지 않고
여자에게 잔소리 듣기 싫고
폼 나게 살 수 있는 돈과 권력은 뜬구름처럼
허망해서 그나마 최소한으로 맺고 있는 관계들을 청산하고
누구의 간섭도 없는 곳으로 가서
약초 캐고, 나물 뜯고, 장작 패서 아궁이에 불 지피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고 싶은 것일까?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며.
자유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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