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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기나무 단풍에 대한 예찬(신경숙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중에서)평행선 눈 2024. 11. 9. 15:05
순천 봉화산에 둘레길을 낸 해는 2014년이었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생기고 많은 사람이 올레길을 걷기 위해 제주도로 몰리면서 스페인의 순례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걸 밴치마킹을 해 많은 지자체마다 산, 해변 등에 길을 냈다. 전국 어느 지방을 가도 지방의 이름을 가진 경치 좋은 길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유행을 따라 순천에서 봉화산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을 냈다. 길을 낼 때 원시림으로 우겨졌던 많은 나무가 잘려 나가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다. 최소한의 길만 났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멀쩡한 길이 있는데 바로 옆에 새로운 길을 만들기고 하고, 필요 없는 길을 내서 겹치는 곳도 있고, 필요 없는 운동시설이 들어섰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무용지물이 된 곳도 있다.
그때 수십 년 된 나무들을 자르고 길을 낸 후 이런저런 나무을 심었다. 내가 새벽 산책을 다니는 길에 복자기나무를 심었는데, 누군가 힘이 남아돌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설마 어른은 아닐 듯) 아직 뿌리가 활착하지 못한 복자기 한 그루를 뽑아서 팽개쳤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무를 세우고 주변에서 손으로 흙을 퍼다 메꾸고 돌로 눌러놓았다.
신경숙의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에서 복자기나무의 단풍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와 절친이었던 박무릉 씨가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단풍 들 때 복자기 자태며 계수나무가 뿜어대는 그 달콤한 냄새를 맡아보면 그 순간만이라도 매인 것에서 놓여날 것이오. 눈부시게 광이 나거든. 내가 복자기다 하고선 뽐을 내고 서 있거든. 야발지다고들 하지. 야발이 무슨 뜻이냐고? 작가가 나한티 묻네? 사전적 의미로야 얄밉고 되바라지다요, 복자기를 말할 때 야발지다고 하는 건 워낙 잘나게 얄밉다는 뜻이겠지”.
소설에서 박무릉 씨가 한 말이지만, 작가가 단풍이 든 복자기나무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가 박무릉 씨의 말을 빌려 단풍이 든 복자기나무에 대한 예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에 누군가 쓰러뜨렸던 복자기나무가 지금 이렇게 예쁘게 물이 들었다.
(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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