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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거부
구두를 수선하려고 작은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구두 수선가게에 들어갔다. 몇 번 거기에서 구두를 고친 경험이 있는데, 주인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내가 간 사이에 점심이 배달되어 왔다. 나는 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을 것 같아서 점심을 먹고 천천히 수선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럴 수 없다며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작은 선반 밑 의자에「파수대」라는 종교를 홍보하는 책이 몇 권 놓여 있었다. 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도 일을 하는 사이에 그 종교를 홍보하면서 지금 똑똑한 젊은이들이 감옥에 가 있다고 했다. 똑똑한 젊은이들을 감옥에서 썩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회에서 봉사를 하게 해서 군 생활을 대신하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총을 잡거나 군사훈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휴전선에 배치된 남과 북의 군사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는 여호와께서는 어느 군대가 이기기를 바라겠습니까. 여호와의 눈으로 보면 모두 형제들입니다."
이런 신념으로 집총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는 젊은 종교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혼란스럽다. 인간에게는 종교를 가질 권리와 가지지 않을 권리도 있다. 하지만 국가의 법을 지키는 데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신자들이 감옥에 가는 것은 2년 동안의 병역 의무를 치르는 보통의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동정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용납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또 부모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공평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
수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의 아들이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사실로 인해서 선거에서 떨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 적이 있다.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장 분노한 사람들은 아마도 군대에 보낸 자식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부모나 장애가 되어 돌아온 자식을 둔 부모였을 것이다. 그 부모들의 입장에서 신자들이 양심적 판단에 따라 군에 가지 않고 감옥을 가는 것은 그리 가슴 아픈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땅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대체 병역을 허용하는 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언론에서 가끔 그 문제에 심층보도를 한다. 판단을 내리기가 무척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이 된다. 종교도 인간들이 만들었지 신이 갑자기 내려와서 만들지는 않았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안식을 주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불행을 주기도 한다. 종교가 자유로움과 포용력을 가지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무서운 힘으로 변질되곤 하였다. 또 종교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삼아서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하거나 고통으로 몰아넣기도 하였다.
좀 오래 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2-5세기에 건축된 해발 2590미터의 바미안 계곡의 높이 53미터와 36미터의 거대석불과 주변 절벽 수천 개의 인공 동굴 속 불상들을 마구 파괴했다. 이 불상들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융합된 간다라 미술을 대표하는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했다. 그 불상을 파괴하는 이유가 이 지구상에 가장 순수한 회교 국가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불상을 파괴하는 것은 우상 제거 차원이라고 한다. 회교 율법에 따라 불상은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행위가 단지 그들만의 악행이 아니라 이 땅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종교적 편견이라는 데 문제는 심각하다고 할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고,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받아들이는 한 세상에서 종교를 통한 화해와 구원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땅에도 종교의 세 불리기가 마치 세상의 구원인양 판단하고 행동하는가 하면 다른 종교라면 무조건 이단과 우상 숭배로 규정하는 종교적 배타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 이 땅의 종교적 교리는 탈레반과 생각을 같이하는 종교인들이 많은 듯하다. 마을 앞에 세운 장승을 조각내기도 하고 절에 들어가 불상을 훼손하기도 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배타적 사고방식이 종교라는 이름만으로 면죄부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사람이 주장하는 종교적 자유가 국민의 병역 의무까지 면제되어도 되는 것일까. 신앙에 근거한 양심적 병역 거부가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과연 이를 악용할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군대를 보내지 않으려고 혹은 가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군대는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그만큼 부담을 큰 의무이기 때문이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남북 관계가 좋아져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서로 신뢰해서 지금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징집이 아닌 모병제로도 군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해서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을 그때 다시 만나면 밝은 미소를 볼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