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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기와 삶
    새와 나무 2018. 4. 16. 13:58


     

    옹기와 삶

     

     

     

     

          아주 오래 전 어떤 겨울철로 기억된다. 어머니가 부엌에다 항아리를 엎어놓고 그 위에 볏짚으로 똬리를 만들어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큰 항아리 위에 불을 놓은 것이 재미가 있어 보였다. 어머니가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에 나는 항아리 위에 계속해서 짚을 올려놓고 불을 땠다. 그러자 항아리에서 하는 마치 살얼음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들어오자 나는 신이 나서 그 이야기를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항아리가 깨졌다며 부지깽이를 들었다. 항아리에 아마 술 같은 것을 담그려고 항아리 밑바닥을 조금 따뜻하게 하려고 불을 놓은 것인데 내가 계속 불을 놓아서 큰항아리를 깨뜨린 것이다.


       옹기는 식구들의 음식을 보관하는 이상의 우리 민족의 삶의 정체성과 생활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문화적 징표이기도 하다. 섣달그믐이 되면 설을 쇠기 위하여 커다란 옴박지(옹기로 만든 납작한 큰 그릇)에 더운물을 담고, 그 안에 들어가 묵은 때를 벗기는 연례행사를 하곤 했다. 살강 위에 쌀을 넣어 두는 아담한 항아리를 채독(채독은 원래는 싸리나무로 만들어 종이를 붙여서 만든 그릇인데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 불렀다.)이라고 불렀는데, 입이 궁금하면 소리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채독의 쌀을 한 줌 움켜 내어 씹어 먹었다.


       김장철에 동치미를 담아 뒤꼍 그늘진 곳에 묻어 두었다가 한겨울이 되면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얼음이 둥둥 뜨는 동치미를 양푼에 가득 퍼 담아 뜨거운 고구마와 함께 먹었다 . 한겨울 뜨거운 고구마와 얼음이 섞인 동치미가 혀를 자극하던 그 감칠맛은 도저히 잊혀 지지 않는다.


       옹기그릇들은 뒤꼍 장독대에 작은 것들은 앞에 서고, 큰 것들은 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런 장독대의 돌 틈에 봉선화가 피어나서 물들어 갈 때면 누님의 손톱도 붉게 물들어 갔었다. 또 초가지붕과 장독에 눈이 쌓여 부드러운 곡선이 완만하게 드러날 때면 낮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조차 매운 기운을 버리고 넉넉하게 휘어지곤 했었다. 장독대는 단순히 음식을 보관하는 장소만은 아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기도의 장소이기도 했다. 소반에 정갈한 샘물 한 그릇을 담아 놓고 두 손을 비비면서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염원과 기도 소리가 수시로 들렸었다. 명절 때나 경사에 시루떡을 해서 먼저 가지고 가는 바로 장독대였다. 장독은 그만큼 식구들의 안녕을 염원하는 토속 신앙과 관계가 깊던 곳이기도 했다.


       고추장, 된장, 간장과 곡식 같은 것들이 들어 있던 정겨운 장독대를 어머니는 늘 윤이 반질반질 나도록 닦았다. 장독대에 먼지가 끼고 더러우면 장맛이 나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장독을 닦을 때마다 되 뇌이곤 했다. 그런 어머니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먹는 음식이 있는 자리를 청결하게 하는 일은 아무리 유난을 떨어도 넘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을 다시 듣게(보게)되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하나씩 죽어 가자 그들의 행동반경 안에 드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상태가 나빠져서 강아지들에게 정성을 쏟아 살리니 장맛이 좋아졌다는 내용의 글을 이현배의흙으로 빚는 자유에서 읽고, 다시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도 시골에는 장독대가 남아 있지만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잃어버린 그 곳에는 텅 빈 쓸쓸함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생명의 기운이 잉태되지 못하는 시골, 주인을 잃은 옹기그릇들은 비바람과 먼지에 시달리다가 깨지고 부서져서 흉물스러운 잔해들로 변하고 말았다. 도시는 도시대로 비좁은 아파트 안에 온종일 해가 드는 정겨운 장독을 설치할 공간을 가지지 못한 도시인은 불행하다고 할 수밖에. 제 아무리 성능이 좋은 김치 냉장고 안에 무공해 채소로 김치, 된장, 간장들을 보관한들 자연 속에서 발효되고 익어 간 옛 맛을 따라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낮은 토담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장독대가 있고, 크고 작은 옹기 속에 삶을 이어주는 끈끈한 생명력의 숨소리가 들리던 그 곳이 바로 우리의 삶을 이어주는 근원이었는지 모르겠다. 흙과 더불어 살며 흙과의 교감 아니 흙 그 자체가 바로 우리 삶이었다. 흙으로부터의 투박함과 여유가 있던 삶의 방식이 뿌리 채 흔들리며, 외래문화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조급함과 경쟁의 압박감으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결코 예전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옹기 그릇 속에서 세월의 묵은 연륜에 따라 익어 가던 장맛만큼이나 인정과 따뜻함을 함께 하던 예전의 생활이 그립다. 우리가 조금만 우리의 문화에 대하여 성찰하고, 외래문화를 취사선택 하였던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이렇게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파트를 지을 때 주방과 화장실이 필수이듯이 햇볕 잘 드는 쪽을 골라 장독대를 놓을 공간을 설계하였다면 전통과 오랜 문화가 공존하는 생활공간으로 정착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쓰던 주전자처럼 생긴 간장을 담던 옹기가 하나 있다. 뚜껑도 없어지고 주둥이와 위쪽이 조금 깨진 볼품없는 것이지만 가끔 쓸어 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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