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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앞에 작은 사람새와 나무 2018. 8. 27. 14:30
자연 앞에 작은 사람
강원도 동강에 댐을 건설하려던 계획이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중단한 지 2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그 강은 우리나라에서 숲과 물이 가장 잘 보존된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반대를 하는 과정에서 동강의 비경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난 뒤 지금 동강은 무참히 파괴되어 간다고 했다. 댐을 만들지 않았는데도. 관광객들이 몰려와 질펀한 먹자판과 술판을 벌이고 떠난 자리에는 어김없이 추한 흔적들을 버리고 간다고 한다. 자가용에 온갖 음식들을 싣고 와서 기름 냄새를 풍기면서 놀다간 모습이 어떠할지 보지 않아도 훤하다.
자연 경관을 즐기려고 간 사람들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몰지각한 추태를 부리고 있으니 아마도 동강이 똥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천박한 관광과 놀이 문화가 마지막 비경이라는 동강을 망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평소에는 다이어트를 한다느니, 두 끼만 먹는다느니 요란을 떨면서 자연을 찾을 때는 걸신들린 사람들이 되는지 모르겠다.
자연을 찾을 때는 단촐하고 가벼운 차림과 음식으로 조금은 절제하고 삼가는 것이 자연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좀 먹고 살만해졌으면 여가를 즐기는 데도 성숙한 문화적 자질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정신과 교양이 물질을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못 살 때 미국의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세계 인구의 5.6%인 미국이 세계 자원 중 40%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여전히 풍요를 즐기면서 살고 있다. 과연 그들의 생활 모습을 추종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선진국의 모습일까. 수십 개의 나라만 미국처럼 된다면 지구 자원은 물론 환경도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청교도 정신의 바탕 위에 이룩한 미국 문명의 실체가 지금의 모습이라면 저들의 학문, 철학, 문화는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단 하나뿐인 이 소중한 땅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서구처럼 환경 단체를 만들어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도 중요하다. 환경을 지키려는 그린피스의 활동이나 시민단체의 활동은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과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을 정립하는 일도 중요하다.(최준식은 환경을 보존하는데 참여와 철학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어떤 종교나 학문에서 그 근본적인 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일도 정부나 기업에 저항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기독교의 바탕 위에 선 선진국의 자연 보존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정화시설을 설치하고 가동하지 않는 예에서 보듯이.
물을 오염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가정에서 나오는 폐수라고 한다. 수세식 화장실의 편리함 뒤에는 자연 오염에 대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사용하는 세제와 세탁기를 돌리면서 사용하는 세제의 오염 또한 심각하다.
아파트에서 물탱크를 청소하려고 단수를 한다고 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서 수세식 변기에 부어 사용을 해보니, 한 번 잡아당길 때 들어가는 물의 양이 너무 많아서 놀랐었다. 수많은 아파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이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며 우리 삶의 터전을 끊임없이 오염시키고 있다.
환경단체나 시민단체의 환경 운동도 필요하고,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도 필요하다. 댐의 건설을 막아 환경을 지키고, 기업들의 환경오염에 대한 감시로, 환경 시설에 대한 투자로 환경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그런 운동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개인 생활에서 각자가 환경에 대한 인식과 이를 지키려는 정신의 정립이다.
이런 정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생활했던 정신을 되살리면 될 것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이 있다고 믿는 자연 숭배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환경을 살리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토지와 마을을 지키는 성황당을 만들고, 마을 앞 고목에도 치성을 드리는 겸손, 비를 비라고 하지 않고 ‘빗님’으로 불렀던 자연에 대한 지극한 마음 등을 미신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삶의 태도와 방식이 엄결(嚴決)하다.
이런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았다면 강가에 집안의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오는 염치없는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고, 자연을 즐기러 가서 기름 냄새를 풍기며 포식을 하고 자연을 더럽히는 부끄러운 후손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핏줄 속에 면면히 흐르는 조상의 고귀한 자연 사랑의 정신을 헌신짝 버리듯 팽개친 채 천박하고 졸렬한 부의 잔치로 자연을 파괴하는 무지한 행동은 이제 버려야할 때가 된 듯하다. 그리하여 숲과 물이 제 모습으로 빛을 내며 사람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이 되도록 ‘아니 온 듯 다녀가는’ 자연 앞에서 작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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