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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마다 나와 이별한다」를 읽고평행선 눈 2019. 11. 13. 21:35
「나는 날마다 나와 이별한다」를 읽고
오래 전에 같이 근무한 분이 책을 선물했다. 책을 읽고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82생 김지영」를 읽은 후 그 책이 1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나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직장에서 남성에 비해서 차별을 받는 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맞벌이 부부라 할지라도 여성이 가사를 남자보다 더 많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사라는 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반복되는 일이라서 육체적으로 고되고,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는 걸 여성뿐만 아니라 가사를 분담하는 남성들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출산을 한 후 직장과 육아를 겸하게 될 때 감당해야 할 육체적, 심리적 부담은 남성에 비해 훨씬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남녀평등은 미완으로 남은 채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하겠지요.
그 책을 읽으며 지영이라는 여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받은 차별이 그 여성만이 겪는 특수성이 아닌 보편적 사실이라는 것에 많은 여성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 퍼센트 공감을 표시할 수 없는 까닭은 모든 일이 ‘나는 잘못이 없고 모든 게 네 탓이다’라는 일관된 흐름 때문이었습니다.
직장을 선택한 것, 결혼을 하는 것, 아이를 낳은 건 남성의 일방적인 강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남성이나 사회가 만든 환경이나 틀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주체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소홀히 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은 귀찮고 힘이 드는 일만은 아니지요. 새 생명을 탄생시켜 키워내는 일은 얼마나 경이롭고 보람된 일인가요? 이 땅에서 지영이처럼 남편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같이 참여하고 이해해 주는 관계에서도 정신이상이 온다면 과연 이 땅에서 사는 여성 중에 몇 명이나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영이 남편처럼 아내를 이해하고 가사를 분담해야 하는 남성들 역시 온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남녀의 평등은 「82생 김지영」에 공감을 보내는 여성들만의 힘이나 결속만으로는 이룰 수 없지요. 남성들이 같이 공감하고 변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 책에 대한 여성들의 공감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서로를 혐오하고 사갈시하는 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남녀의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은 삶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문제가 아닐까요?
그런 관점에서 「나는 날마다 나와 이별한다」를 읽으면서, 읽은 후 ‘이 책이야말로 백만 부가 팔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0년 동안이나 명절날 친정에 가는 걸 허락하지 않은 시어머니, 그 꼬장꼬장하고 서릿발 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며 겪었을 다른 어려움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 시어머니와 아름다운 이별! 감동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이별은 작가가 시어머니와 맞설 때와 양보할 때에 대한 분별이 있어 가능했을 겁니다. 어느 한쪽으로 쏠렸다면 죽음 앞에서도 끝내 원망과 미움을 버리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을 해 봅니다.
돈 빼고 다 갖춘 남편의 경제에 대한 무관심, 가정생활에서 경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기본이고 기초인데 그걸 갖추지 못한 남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간직한 작가의 심성, 모든 걸 다 갖추었어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지요. 그렇지만 남편의 가장 큰 결점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작가님의 태도는 놀라움을 넘어 존경스럽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극빈한 상태에서는 그 스스로 자신을 모욕할 태세를 갖춘다.’라고요. 대작가의 가난에 대한 인식이 그러한데 이미경 작가님은 대가의 인식조차 넘어서는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기 때문일까요?
큰아들을 홀로 서게 하기 위해 어느 날 갑자기 등을 돌려버리고 외면해 버리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받은 충격과 당혹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해 봅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아들의 입장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더구나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고 풍부한 음악적 감성을 유지해야 할 음악인인 아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등을 돌리며 감당했어야 할 아픔, 또 한편으로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을 아들이 잘 자라 ‘결핍이 은인’이라고 받아들일 만큼 성장했을 때 어머니가 느꼈을 뿌듯함이 전해옵니다.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떠받들고 불편한 일이 없을까 노심초사 하는 어머니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자식에 대한 학대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의 아픔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관망하며 홀로 가슴앓이를 하는 성격을 가진 작가님이 그런 자신과 어렵게 이별하고, 스스럼없이 타인을 안아주고, 다독이는 자신을 바라보며 느꼈을(이별한 나와 새로 탄생한 나를 바라보는) 기쁨과 뿌듯함은 아마 제2의 탄생에서 오는 환희였을 거리고 감히 짐작해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아픔이기는 하지만 우연히 찾아 올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의 이별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이별이 아닐까요? 그것도 날마다! 내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바꾼다는 것은 나라는 작은 우주에서 천지개벽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작가님의 자신과의 이별은 자신과 이별하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반성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그늘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작가님의 결연한 시도는 또 다른 나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이겠지요. 홀로서기가 완성되었을 때 남편과작가님은 새로운 관계 정립 속에서 더 완전한 사랑으로 태어나게 되겠지요.
세상에 완전한 인간은 없지요. 해서 사람들은 그걸 핑계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합리화하지요. 어쩌면 편리한 면피의 수단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작가님은 자신과 가족 그리고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나 거북함을 변신 혹은 자신과의 이별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나와 이별한다」는 나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감동은 화려한 미사여구를 나열한 문장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진실하고 솔직한 글 속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가족에 대한 치부를 꾸밈없이 드러내고 그걸 아파하고 치유해가는 과정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작가의 마음을 보게 되지요. 가끔 자신과 가족에 대한 자랑을 잔뜩 늘어놓은 에세이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책들을 읽다가 실망하며 책을 덮게 됩니다. 글(수필)이라는 게 삶의 뒤편 음지에 드리워진 아픔, 수치, 분노, 슬픔, 모순 등을 끄집어내어 쨍쨍한 햇볕에 말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작가님의 글은 저에게 마음 속 아득하게 멀리 박제되어 있던 감성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자신과 이별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불편함, 미숙함, 부족함 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일이라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해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요. 익숙했던 자신과 결별하고 낯선 나와 만나는 어색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던가요?
「82생 김지영」를 읽은 독자들이 「나는 날마다 나와 이별한다」 꼭 읽어서 여성에 대한 사회와 남성의 차별이 심하다고 느낀 만큼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불편함도 같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또 반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감동과 함께.
「나는 날마다 나와 이별한다」가 베스트 셀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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