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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와 이웃
    평행선 눈 2018. 12. 21. 14:40


     

    아파트와 이웃

     

     

     

          퇴근을 하니 식탁에 떡이 있어서 웬 떡이냐고 물었더니 8층에서 이사 온 사람이 가져왔다고 한다. 도시에 아직도 이런 인심이 남아있나 싶어 마음이 여간 흐뭇한 게 아니었다. 내가 사는 12층까지 떡이 왔으니 우리 통로에 사는 삼십 가구에 모두 떡을 나누어준 듯하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이웃과 인정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요즘 보기 드문 사람들인 듯하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네 집이 같은 층에 산다. 처음 이사를 와서 우리 층에 사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간단하나마 다과를 나누었다. 그 중 처음 두 집이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면서 이사를 간다는 말도 없이 가버렸다. 서로 인사를 하고 지냈지만 그리 친숙하게 지내지 못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바로 옆집에는 지금 네 번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두 번째 사람들은 신혼 부부였는데, 우리와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가깝게 지내다가 이사를 갔다. 세 번째 온 사람들도 젊은 신혼 부부였는데 언제 들어왔다가 언제 나가는지 알 수 없었다. 가끔 은행 같은 데서 그 부부를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었다. 한밤중에 가끔 싸우는 소리와 살림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날 집달리가 와서 봉인을 했다. 그 후 네 번째 사람들이 와서 살고 있는데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은 견고한 성벽 하나씩을 쌓고 그 속에 안주하는 생활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길이 없다. 서로가 출퇴근 시간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니 얼굴을 마주치는 경우가 드물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시선을 어디에 둘까 전전긍긍하며 서로 눈길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지만 가까이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주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정도 하는 게 고작이다.


       가까운 이웃이 멀리 사는 친척보다 낫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되고 말았다. 예전에는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웃 간에 미움과 정이 함께 하는 생활이었다. 제사를 지내거나 맛있는 음식을 하면 이웃들에게 돌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접시에 떡을 담아 집집마다 나누어주고 오는 일은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살아가는 방법이 같으니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서로에게 동질성을 가져다주어 서로 가깝게 지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히 정과 친밀감을 가진 공동체적 삶을 살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다.

    들에서 일을 할 때도 품앗이를 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고, 궂은일이나 급한 일이 생길 때는 자신의 일처럼 상부상조하면서 살았다. 설사 낯선 사람이 찾아와도 하룻밤 잠을 재워주고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들에서 일을 할 때 점심을 먹거나 샛거리(새참)를 먹다가 사람이 지나가거나 저 건너편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끼리 음식을 먹으면 다른 사람에게 야박하다고 흉이 되는 세상이었다. 여인네들은 마실을 통하여 여성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생활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를 풀었다. 비교적 한가한 겨울철에는 모여 앉아 고구마를 삶아 동치미와 함께 먹으며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재담꾼에 의해서 방안에는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여름철에는 마을의 여인들이 샘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주변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이 알게 모르게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이게 마련이었다.  

      

       서로가 너무 잘 알아서 때론 흉이 되고, 시빗거리가 되기도 해서 서로 싸우는 일도 있었지만 옆 사람의 중재로 화해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공동체적 삶을 살았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일인데 지금 우리는 이웃이 예전에 비해 가장 가까이 살지만 가장 먼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적 삶을 고사하고 층간소음을 대화로 해결하지 못하고 살인까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삶을 사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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