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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스트와 입대
    단편 2020. 6. 18. 14:55

                               나영은 논산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기 전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있는 아들 면회를 하려고 4시간 동안 차를 달려 밀레 교육대 정문에 도착해 차를 멈추었다.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4시간 동안의 운전이 피로한 줄도 모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정문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차에서 내리려니 무릎과 허리가 뻐근하며 굳어진 듯했다. 4시간 동안이나 운전을 한 탓도 있겠지만 이제 지천명 나이에 접어들어 노화된 신체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부대 정문에 들어서려는데 부대 안쪽에서 천둥소리 같은 폭발음이 고막을 찢는 듯했다. 그리고는 불붙은 드럼통이 연달아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불길이 치솟았다. 주춤했던 나영은 온몸이 찢기는 듯한 아픔과 고통이 엄습하며 목이 터져라 아들 이름을 불렀다.

    태준아!”

    하지만 아들 이름은 목에 걸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영은 몸부림을 치며 있는 힘을 다해 아들 이름을 불렀다. 그렇지만 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간 나영은 두 손으로 입을 벌리려고 발버둥 쳤다.

    나영아, 여보. 왜 그래?”

    남편이 나영을 흔들어 깨웠다. 나영은 눈을 멀거니 뜬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제 아들이 자대 배치를 받은 후 처음으로 면회를 갔다. 남의 아들은 서울, 부산, 광주 등으로 자대를 배치받아 주말마다 집에 오니 군대에 간 건지 실감도 나지 않는다는 친구들이 세 명이나 있었다. 그런데 나영의 아들은 일기예보 때 늘 가장 낮은 온도를 나타내는 철원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점심을 먹은 후 카페로 가서 부부는 커피를 주문하고 아들에게는 평소 만들어주던 보온병에 담아 간 카페라테를 따라주었다. 아들은 자신의 머그잔에 담긴 카페라테를 두 손으로 감싼 채 눈물이 그렁한 채 말했다.

    엄마, 너무 힘들어, 추위보다 더 힘든 건 같이 생활하는 관심병사가 밤마다 통곡하는 소리가 때문이야.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에 그 관심병사가 우리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악몽을 꿨어. 그 병사 곧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하는데 너무 무서워.”

     

    나영은 숨이 막히며 온몸이 저려왔다. 추위와 무서움에 시달려 까칠해진 아들을 더는 바라볼 수가 없었다. ! 어째서 우리 아들에게 이런 불행이. 나영은 왈칵 눈물이 터지려는 걸 애써 참으며 아들의 등을 쓸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영이 젊은 시절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했던 말이 생각나며 참았던 눈물이 터졌고 그 눈물을 언제까지나 멈출 수가 없었다.

    남자들 군에 가는 게 뭔 벼슬이야? 여자들은 애 낳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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