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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오웰의 소설 「1984」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텔레스크린이라는 감시 장비로 국민을 24시간 감시하고
과거를 조작하여 현재를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삶의 모습.
죠지 오웰이 상상했던 1984년. 여기서 1984는 상징적인 해이지만 앞으로
좀 더 인터넷이나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이 발전한다면 국가의 통치자들은 그 기술로 국민을 감시하며 지배하고 싶지 않을까?
소설 「1984」에서 당이 인간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까지도 완전하게 복종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권력이든 금력이든 그 내면에는 악마가 꿈틀대고 있으니까.
「1984」에서는 국민들을 빅 부라더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사랑도 철저히 차단한다.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들이 주체성을 가지게 되고, 노예 되기를 거부하고 약자도 강자가 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건 오직 하나 복종하는 노예를 원할 따름이다. 개인을 국가 권력이 파괴하는 건 참 쉬운 일이다.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할 수 있는 국가는 어떤 개인도 폭력을 가해 굴복시킬 수 있다.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개인들이 사랑이나 사람들 간의 연대를 지독히 싫어한다.
유신 때 결혼식과 장례식 같은 최소의 인륜적 행사만을 허용하고 여러 사람이 자주적으로 만나는 걸 감시하고 위반하면 처벌했다. 유신에 대해서 반대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몰아 고문과 형벌을 가해 죽이거나 불구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1984」의 전체주의 국가에서도 두 남녀 사이에서 사랑이 싹트게 된다. 윈스터와 줄리아는 자신들을 결코 갈라놓을 수 없다고 다짐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빅 부라더라고 할지라도 자신들의 사랑을 결코 파괴할 수 없다고 믿는다. 자신들을 힘으로 굴복시킬 수는 있어도 자기들의 내면 즉 사랑하는 감정은 결코 제거할 수 없다고 자신한다.
윈스터는 줄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고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이 되는 거야.”
그렇지만 윈스터는 국가의 거듭되는 폭력에 굴복하게 된다. 자신들의 내면까지 지배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또 약속했지만 물리적으로는 물론 내면까지도 철저히 굴복하게 된다. 그는 결국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것은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부라더를 사랑했다.’
순간 빅브라더의 하수인 쏜 총알이 남자의 머리를 관통하게 한다.
빅 부라더는 자신들의 권력이 물리적으로 물론 결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던 인간의 내면까지도 굴복시키고 지배할 수 있다는 확인하는 순간 남자를 죽이게 된다. 득의에 찬 승리를 만끽하며.
비극!
어차피 개인은 국가 권력(폭력)에 물리적으로 한없이 약한 존재이지만 내면까지도 굴복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를 남루하고 초라하게 만든다.
지금처럼 기술이 발전한다면 생활하는 모든 제품과 기구들에 백 도어를 심어 두고 개인을 감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들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그때 과연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을까?
통치자들은‘과거를 조작하여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여 과거를 지배하며 영구적인 권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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