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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진기행 다시 읽기
    평행선 눈 2022. 5. 17. 17:18

     

     

     

     

    무진기행 다시 읽기

    2022. 5. 17

     

    우연히 순천이 자랑하는 김승옥 작가가 쓴‘무진기행’을 재해석하는 글을 보았다.

     

    「무진기행」이 명작이라고 하는데 내가 처음 읽었을 때 안개에 뭉뚱그려서 비겁한 주인공의 행동을 아무런 죄책감이나 책임감 없이 넘어간, 최소한의 여자에 대해 미안함마저 저버린, 순간적 일탈을 합리화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 작품이 엄청 명작이라고 해서 내가 작품 해석을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소설이란 윤리 교과서가 아니니까 인간의 모순, 아픔, 상처 등을 그려내며 인간 삶에 대해 재해석과 탐구하고 되돌아보는 것이니까 내 생각은 현실과 소설의 구분을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면 그 작품은 성폭행의 흔적을 교묘하게 감추거나 두리뭉실 넘어간 작품이라는 관점으로도 볼 수 있을 것도 같기는 하다.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을, 마치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으로부터, 누군지가 자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주지 않으면 상대편을 찌르고 말 듯 한 절망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 주었다. 그 여자는 처녀는 아니었다.”(「무진기행」에서.)

     

    백승찬은 이 부분을 예로 들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수십 년 전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세밀하게 직조된 문장의 진의를 알기 위해 여러 차례 다시 읽었던 것 같고, 우울과 허무에 가득 찬 젊은 시절의 바닷가 자취방을 다시 찾은 정취에 빠졌던 것도 같고, 그 방에서 벌어진 남녀 간의 정신적·육체적 실랑이를 ‘칼’과‘절망’과‘조바심’으로 표현해낸 작가의 감수성에 놀랐던 것도 같다. 하지만 확실히, 그때의 나는 이 대목에서 성폭행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가수이면서 제주도에서 책방을 하는 아주 멋진 요조의 글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성폭행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무진기행」이 발표된 지 반세기가 흘렀다. 그사이 소설은 글자 하나 바뀌지 않았는데, 독법은 크게 달라졌다. 가수이자 책방을 운영하는 요조는 경향신문 ‘내 인생의 책’에서

    “내 인생에서 김승옥이 얼마나 소중한 작가인지 아주 길게 공을 들여 고백하고 싶다”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페미니즘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강연을 들은 뒤 “언제 보아도 유려하고 손색없는, 내가 사랑하는 문장들 사이에, 강간이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적었다. 요조는 이를 미처 읽어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작가 장정일 역시 한국일보 칼럼에서

    ‘ “성폭행 범죄소설로도 읽힐 수가 있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여자를 농락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컷들의 간교하고 구역질 나는 센티멘털리즘으로 읽힐 수도 있지 않겠는가?” ’라는 소설가 이제하의 페이스북 언급을 인용하며, ‘무진기행’에 대한 페미니즘 해석을 거들었다.

     

    나는 다시‘무진기행’을 읽어봤다.

    성폭행이라고 딱히 말하기는 뭐하지만(여자가 기꺼이 동행했고, 동숙했다는 점에서는 꼭 그리 해석하기가 좀 뭐해서. 여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걸 그렇게 감성적으로 표현했나? 그 여자의 조바심과 칼) 나는 그의 이 말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 여자는 처녀는 아니었다.’

    왜 그 말을 했을까? 여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면(여자의 조바심) 그녀가 처녀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는, 아니면 죄의식 덜했다는 의미일까?

    제약회사에 다니고 두 번째 결혼한 남자가 그 여선생과 단 한 번 잠을 자고 처녀가 아니라는 말은 그녀에 대한 모멸일 수도 있고 나의 행동을 변명하기 위한 말일 수도 있다.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해내는 것처럼. ‘처녀가 아니었다’라는 말은 내 행동에 대한 합리화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 사고와 행동에 대한 고뇌일 수도 있다.

    마지막에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가 반성이었을까? 일상을 섬세하고 아름답고, 감성이 풍부한 문장들로 표현한 작품이라서 이런 말은 문제가 안 되었을까?

    그 단편을 쓴 시대가 64년대라고 하니까 그때는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관점이 대단히 가부장적이어서 여자는 그저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으로 생각할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작가는 약자에 대한 연민을 가지는 것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진을 떠나면서도 주인공의 그런 독백은 없다.

     

    순천만에 있는 김승옥 문학기념관을 찾아 그에 대한 물음을 다시 곱씹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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