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국화
천상병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접힌 이순간이......
들국화
곽재구
사랑의 날들이
올 듯 말 듯
기다려온 꿈들이
펼 듯 말 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무릎걸음으로 걸어간
절벽 끝에서
당신은 하얗게 울고
오래된 인간의 추억 하나가
한 팔로 그 절벽에
끝끝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들국화
이해인
꿈을 잃고 숨져 간
어느 소녀의 넋이
다시 피어난 것일까
흙냄새 풍겨 오는
외로운 들길에
웃음 잃고 피어난
연보랏빛 꽃
하늘만 믿고 사는 푸른 마음속에
바람이 실어다 주는
꿈과 같은 얘기
멀고 먼 하늘 나라 얘기
구름 따라 날던
작은 새 한 마리 찾아 주면
타오르는 마음으로 노래를 엮어
사랑의 기쁨에 젖어 보는
자꾸
하늘을 닮고 싶은 꽃
오늘은
어느 누구의 새하얀 마음을 울려 주었나
또다시 바람이 일면
조그만 소망에
스스로 몸부림치는 꽃
무식한 놈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들국화
회색갈피
늙은 소나무 마른 기침소리
끊이지 않는 산비탈에 앉아
산벚나무 물드는 새벽이
올 때까지 내내 기도했다.
하얀 미소로 너를 맞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