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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에 첫눈이 내린 날평행선 눈 2023. 11. 29. 14:42
첫눈!
눈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빠르게 첫눈이 내렸다.
11월 18일 봉화산에 눈이 쌓였다.
그렇게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숲 속 떨기나무들은 하얀
면사포를 쓰고 수줍게 결혼식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처럼
다소곳하게 서 있다.
첫눈은 첫사랑처럼 사람들을 홀리는 끌어당김이 있다.
지난 봄 꽃의 개화에서부터 시작된 흥분과 설렘이
폭염 속 진초록의 숲에서 울어대던 뻐꾸기 소리.
나른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지만
나뭇잎들이 채 단풍으로 물들지 않았는데
첫눈이 내려 밤사이 숲 속을 하얗게 덮으니
하얗게 변해버린 것은 숲뿐만 아니라 나른하게 지쳐있던
내 육신도 깨어나는 것 같다.
내 육신만이 아니라 역주행과 퇴행을 거듭하는 이 나라
백성들의 정신이 바로 깨어 첫눈처럼 환한 희열을
가져다주면 좋으련만.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
첫눈
장석주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이루어졌거든
뒤뜰 오동나무에 목매고 죽어버려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첫눈이 온다 그대
첫사랑이 실패했거든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눈길을
맨발로 걸어가라
맨발로
그대를 버린 애인의 집까지 가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끝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첫눈이 온다 그대
쓰던 편지마저 다 쓰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들에 나가라
온몸 얼어 저 첫눈이 빈 들에서
그대가 버린 사랑의 이름으로
울어 보아라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한
그대의 순결한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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