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3일 밤은 공포로 떨었고, 12월 7일 밤은 분노로 떨었다(국회 윤석열 탄핵 표결 투표 장면을 보고)산문 2024. 12. 8. 10:17
12월 8일 새벽, 나는 7일 밤에 일어났던 국회의 윤석열 탄핵안 불성립 장면과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이 겹쳤다. 벌떡 일어나서 한나 아렌트의 책을 펼쳤다.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20세기 독창적이고 영향력이 컸던 정치 사상가인 그가 말했던 무사유와 악의 폄범성을 다시 찾아보았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책임자 아이히만의 재판(1961년)에서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지시한 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일관했다. 이런 행위를 20세기 정치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 생각 없음 즉 무사유라고 했다. 이런 무사유가 위험한 이유는 대량 학살에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시키니까 옳지 않은 일에도 할 수 없이 따르는 것이다. 온건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이 상관의 지시에 따라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한다.
2024년 12월 27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나는 한나 아레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저질러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국민의 힘(앞에 국민이라는 말이 부끄럽다) 국회의원들이 김건희 특검안에 투표한 후 회의장에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중에 회의실에서 나가는 그 사람들의 표정과 태도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카메라 앞에서도 부끄럽다거나 죄송하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당의 결정을 따라 행동했다는 안도감 혹은 소속감이었을까? 나는 그들의 행동이 바로 아이히만 적 사고와 행동 즉 무사유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국회의장이 국민의 힘 의원들에게 투표하라고 간절하게 말을 했지만 오지 않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모아 두지 않으면 당의 결정을 위반하고 투표할 수도 있는 의원이 나올까 봐서 강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함께해야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집단의 틀에 가두려는 행태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12월 3일 위태로웠던 비상계엄령 해제 결의안 투표 때도 볼 수 없었는데 그들의 당사에 모여있었다고 한다. 12월 7일에도 따로 모여 회의한다고 했다.
국회 주변에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이 나와서 친위 쿠데타(기존의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무력이나 폭력을 동원하는 행위)로 내란의 수괴 피의자가 된 윤석열을 탄핵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12월 3일 밤에는 공포로 떨었고, 12월 7일 밤에는 분노로 떨었다. 내란의 수괴 피의자를 만나 무언가 확약을 받은 것 같은 한동훈의 갈지자 행보와 105명의 국회의원이 국민을 저버렸다. 그런데 추경호 원내대표가 탄핵안표결 불성립을 만든 후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신 승리라고 밖에 없는 뻔뻔한 말을 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담화문에도 국민이라는 말이 8번 정도 나온 것 같다. 그 시각 국회의사당 주변과 전국 각지에서 국민이 추위에 떨며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었다. 그런 국민의 외침과 뜻을 저버리고 투표장을 떠난 원내 총무의 입에서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이 나왔다. 그 뻔뻔함에 분노가 끓어올라 치가 떨렸다.
마지막으로 투표장에 나타난 김상욱이라는 국회의원이 울먹이며 자신은 보수주의자라며 투표를 한 입장을 발표했다.
그의 말속에 짙게 드리워진 악의 평범성과 무사유를 볼 수 있었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반대하지만, 당의 결정에 따라 탄핵에 찬성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지만…. (탄핵 반대투표를 하러 오는 데도 격한 감정으로 먹이며 말할 정도라면 국힘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사유로 인한 악의 평범성은 국민이 자유를 억압당한 채 폭력과 공포에 노출된 채 비상계엄의 엄혹한 현실에서 고통받을 수 있음을 외면했고, 내란의 수괴인 피의자가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다시는 그 부끄러운 입으로 국민을 입에 담지 않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의 투표 불참으로 탄핵 투표 불성립이 불러올 시민인 국민이 표출할 ‘국민의 힘’을 그들은 앞으로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 나는 이재명 대표가 탄핵안 표결이 있기 전 한동훈 대표를 만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긴 안목으로 빅딜을 해서라도 탄핵이 성공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해서 탄핵이 되었다면 이재명 대표는 큰 정치인으로 우리 정치에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이다.
(탄핵 표결투표를 하지 않고 회의장을 떠나는 의원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탄핵 시위장을 축제로 만든 MZ 세대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 (41) 2024.12.10 김예지 의원님 존경합니다 (8) 2024.12.09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령! 용감한 사람들 그리고 비겁한 사람들. (7) 2024.12.07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와 민주주의 위기 (37) 2024.12.05 추락하는 한국 축구 (2) 202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