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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그릇의 메밀국수
    독서 2018. 2. 12. 15:32



    한 그릇의 메밀국수

     

     

     

       유명 강사가 학교 급식실에서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바람직한 자녀 교육이라는 주제로 교양 강좌를 했다. 이야기의 큰 틀은 임신에서 사춘기까지 아이들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하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삶, 자기 자식들을 키우며 겪은 일들, 자신이 박사 학위를 따기까지 공부하면서 겪은 일을 예로 들어가며 재미있게 강의를 전개하였다.

    강의의 끝 부분에서 일본의 구리 료헤이(栗良平)한 그릇 의 메밀국수의 예를 들며 효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성교육에서 자신의 부모를 존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재미있고 즐거워하며 이야기를 듣는데 나는 반대로 불쾌한 마음이었다. 이야기를 각색, 편집하고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여 자신의 주장을 펴나갔기 때문이다.한 그릇의 메밀국수는 효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잘 나타내는 행동양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한다. 일본의 의사 혈연 공동체적 집단주의와 정형의 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고 아담하지만 일본의 문화와 정신이 스며있는 일본의 전자 제품과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사례를 들 경우 그 사례의 해석은 객관성을 가져야 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감의 자의적이고 편집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앞부분에서 예로 든 것까지 각색되고 편집되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300명이 넘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그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전제가 아니고서는 그 이야기를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강사가 너무 안일하게 준비 없이 타성에 젖은 강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의 이 이야기의 편집은 첫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영업이 다 끝난 늦은 시간에 북해정이라는 메밀국수 집에 남루한 차림의 세 모자가 들어서서 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이 모습을 본 여자 주인이 세 사람의 형편이 어려운 것 같아서 국수 세 그릇을 내라고 주방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말해서 세 그릇의 국수를 주었다고 이야기의 본질을 바꾸어 버렸다.


       실제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남편에게 세 그릇을 서비스로 주라고 하자 남편은 그렇게 하면 오히려 손님이 신경을 쓰게 되니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로는 그러면서 사리 한 덩어리에 반 정도의 뭉치를 더 집어넣는다. 먹는 사람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몰래 더 넣는 것이다. 무뚝뚝해 보여도 당신은 인정 있는 사람이라고 아내가 슬며시 칭찬한다.


       이어령의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에서 이 이야기에 들어 있는 일본 문화의 본말(효와 세 그릇을 주었다는 것과 관련된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다.

       세 모자가 북해정에 국수를 먹으려고 온 것은 강사가 말하는 가난과는 관계가 별로 없다. 섣달 그믐날 메밀국수를 먹는 문화적 행위에 동참하되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 시간을 선택한다. 세 사람이 한 그릇을 시키면 다른 사람과 주인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이 되니까 주인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본인 특유의 행동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주인은 돈을 다 받으면서도 한 그릇을 시켰을 때 거저 주거나 세 그릇을 주는 것이 아니고, 먹는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반의 국수를 몰래 내놓는 인정을 베푼다. 상인으로서의 실리도 취하고 먹는 사람의 체면도 살리는 절묘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 사람의 행동 양식이다.


       가게가 번창하고 세월이 흘러도 세 모자가 있던 테이블을 치우지 않고 그 자리에 보관하는 태도는 일본이 개방적이면서 자기의 문화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이 2번 테이블을 예약석이라고 써 놓고 10년 넘게 기다리는 행동은 일상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의식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행위를 양식화하고 일정한 형식으로 정형화하려고 한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다도가 되고, 붓글씨를 쓰는 행위는 서도가 된다.


       낡은 테이블은 그 자리에 사장되고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행운의 테이블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낸다. 외래문화가 들어와도 그들의 천황은 여전히 숭배와 복종의 대상이듯이 2번 테이블은 일종의 제단으로 바뀌어 버린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오쿠보 나오히고)은 국회에서 이 이야기를 낭독하여 총무처 장관이 눈물을 흘리게 하고, 결국 전 국민을 울리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허구와 현실이 만나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종의 정신적 질환 속에 빠져드는 것이다. 가미가제 특공대의 자폭 공격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강사의 말대로 북해정 주인이 세 그릇의 국수를 말아주는 것은 우리의 행동양식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 거칠고 서툰 행동이다. 나의 분도 주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남의 분도 지켜주지 못하며 자타 간에 분을 지키지 못하여 의타적으로 되고, 매사에 남의 탓만 하며 원망할 거리도 많아지게 된다. 이 이야기는 검약과 사치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1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아들은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가운데 최고의 사치를 계획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에 어머니와 셋이서 삿포로의 북해정을 찾아가 삼 인분의 메밀국수를 시켜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으며 진 빚을 갚기 위해 매달 오만 엔의 돈을 갚아가면서 가족은 한 그릇의 메밀국수를 시켜 300엔을 절약하는 검약을 실천하고 있다. 유명 강사의 말의 곧이곧대로 듣지 말고 조금 비켜서서 듣고 책 이야기를 하면 직접 읽어보고 해석하는 태도도 가져보면 어떨지?


       결국한 그릇의 메밀국수는 검약과 사치에 대한 극한적 미학을 하나로 묶어 버린 이야기이다. 또한 스스로의 분을 지키며 역경을 이겨내고 또 그 분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보장해주는 일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축소시킨 이야기이다.


      

    20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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