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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봉과 체 게바라독서 2017. 12. 22. 14:53
윤한봉과 체 게바라
자신과 가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방식이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를 위해서,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지에서 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안락한 삶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일반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하여 때때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독재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민중들의 자유를 위하여 불꽃처럼 사는 사람과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권력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살다간 사람의 책을 읽었다.
한 권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인 윤한봉이 쓴「운동화와 똥가방」이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장 코르미에가 쓴「체 게바라 평전」이다.
윤한봉의 책은 서점 구석에서 우연히 찾아낸 것이고, 체 게바라의 책은 만 권 이상 팔린 인기 있는 책이다.「운동화와 똥가방」은 윤한봉 자신이 쓴 책이고,「체 게바라 평전」은 장 코르미에가 체 게바라에 대하여 단순한 사실적 기술이 아닌 그의 사상과 영혼의 아름다움까지 느껴지도록 쓴 책이다.
윤한봉의 책이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이유는 그가 이미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진 사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시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광주의 비극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에 비해 체 게바라의 책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독자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끌 요소가 인물 자체의 매력과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작가의 역량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국인에 대한 호감과 책에 대한 상업적인 선전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윤한봉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행방을 찾으려고 당시 군부는 혈안이 되었었다. 나중에 그가 미국으로 밀항하여 정치적 망명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현대사의 암울했던 ’80년 봄 자유를 위해 싸운 그의 책은 수기 형식으로 쓰여졌다.
유홍준은「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윤한봉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윤한봉,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이가 어리거나 세상을 너무 쉽게 산 사람이다. 광주민주화항쟁의 주모자로 수배되어 화물선 갑판 밑 의무실 화장실에서 37일간 라면부스러기로 연명하며 드디어 미국밀항에 성공한 분이다. (남도답사일번지(2). 55쪽)
윤한봉은 ’80년 우리 자신의 역사적 비극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다. 반면 체 게바라는 쿠바, 콩고, 아프리카에서 사회주의 건설로 민중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우다가 죽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부와 독재 권력의 압제에서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소외된 백성들을 위하여 불꽃처럼 살았다는 점이다.
친정아비 갑오년에 죽창들다 맞아죽고
시아비는 의병 나가 머리카락만 돌아오고
지아비는 항일투쟁 만주벌에 귀신되고
큰아들은 징용으로 외동딸은 정신대로
작은아들 6.25에 큰손자는 4.19에
……
(운동화와 똥가방. 39쪽)
그대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은 이
토지개혁, 정의, 빵, 자유를 외치는
그대의 목소리, 사방에 울려 퍼질 때
그대의 곁에서 하나된 목소리로
우리 그 곳에 있으리.
(체 게바라 평전. 178쪽)
민중(가난하고 힘없는 소외된 백성)의 삶은 늘 고달프다. 인류 역사에서 정치체제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그들의 삶은 변한 것이 없었다. 권력에 의해서 짓밟히고, 거대 자본에 의해서 수탈당하고, 지식인들에 의하여 무시되었다. 체 게바라의 사회주의 건설로 민중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무력 투쟁과 윤한봉의 민주주의 수호와 민족공동체를 위한 평화적 활동이 서로 방법은 달라도 그 본질에는 소외된 사람들을 온몸으로 사랑하는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두 사람은 자신에게 지극히 엄격하다. 윤한봉은 망명 35일 동안 화물선 화장실에서 숨어 지냈다. 하루에 멸치와 새우 한 마리, 잣 세 알, 12일째부터 꿀 두 숟가락 그리고 라면을 여덟 차례 받아먹으며 지독한 배고픔과 살인적인 더위를 이겨낸다. 밀항을 도와 준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는다고 한사코 거절한다. 또한 미국 망명 생활 수칙 다섯 가지를 정하여 실천하였다. ‘조국의 가난한 동포들과 감옥에서 고생하는 분들을 생각해서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그리고 망명 내내 간단한 생활용품을 넣을 가방 하나와 고무신을 신고 지냈다.
체 게바라는 투쟁을 할 때나 혁명에 성공했을 때나 올리브 그린색 군복에 베레모를 고집하였으며, 무장 투쟁을 할 때 부하들과 똑같은 물과 음식을 먹으며 동고동락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규칙을 위반하거나 이탈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이든 부하든.
윤한봉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광주수난자돕기회, 민족학교, 재미한국청년동맹을 조직하여 재미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조국의 자주 민주통일과 평화를 위해 활동한다. 이승만처럼 되지 않기 위하여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민족주의자이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운다.’고 하며, 민족주의자가 아닌 착취와 빈곤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한, 민족을 초월한 전사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자신이 이룬 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윤한봉이 귀국하여 5.18 기념재단 설립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운동의 탈을 쓴(5월을 팔고 민족을 파는 사람들) 위선자들이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린다고 판단하고, 온갖 중상모략을 다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재단에서 어떤 지위나 직책도 맡지 않는다.
윤한봉은「민족연구소」를 설립하여 민족의 위대한 미래상과 장기적인 진로를 제시하려 한다.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길을 택하지 않고 오로지 민족만을 생각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13평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체 게바라 역시 쿠바 혁명이 성공한 후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콩고의 민중을 위해, 볼리비아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무력 투쟁을 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는 자신의 조국이 아닌 이민족의 민중의 삶을 위해서 싸우다가 이슬처럼 사라져 갔다.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삶이 아닌 착취와 빈곤, 억압받는 민중들을 위한 싸움에 나섰던 사람들이다. 요즘처럼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세태에서 두 사람이 살아간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존재의 가치와 향기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챙기는 일반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 민족이나 민중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에게서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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