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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독서 2018. 4. 9. 21:08

     

    지금,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이순원 작

     

     

        

            압구정동, 강남 1번지 아니 서울 공화국 1번지라고 해야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자본, 권력, 소비와 향락의 첨단을 달리는 곳. 압구정동에서 활보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힘을 가진 우리 자본주의의 노른자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반 사람들에게 증오와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되더라도 그들은 그들만의 견고한 성으로 둘러막고 일반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다.


      압구정동이 이 땅 자본 계급의 귀족적 상징이 아닌 이 땅 졸부들의 끝없는 욕망과 타락의 전시장, 아니 똥같이 왜곡된 한국 자본주의가 미덕처럼 내세우는 환락의 대명사이며 우리 시대의 욕망과 타락의 가장 민감한 성감대라고 작가는 말한다.

    압구정동에서의 생활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소설에 나와 있는 작가의 의도된 사건과 인물들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 제한된 시야를 가지고 내 나름대로 압구정동의 실상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쓰기 위하여 작가는 많은 시간을 압구정동의 탐색에 쏟았을 것이다. 때문에 시류를 나타내는 소설이 때론 사실보다 더 실감나게 진실을 전할 수 있다

         

      압구정동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치부한 사람, 권력의 뒷거래로 은밀하게 자본을 형성한 정치인, 학자, 법률가, 고위 공무원 등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웃의 아픔이나 어려움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못난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잘난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소비와 과시가 유일한 낙이고, 향락과 타락까지도 미화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진 유별난 사람들의 공간이다. 인간들이 가져야 할 이성과 감성의 기능을 상실한 감각만이 살아 숨 쉬는 음산한 거리일지도 모른다. 온갖 인공의 치장을 한 화려한 공간에서 무수한 촉수를 들이대고 향락과 소비의 단물을 빨아먹는 신귀족들이 사는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천박한 자본주의의 하수구를 고발하고 있다.

      작가는 그런 가진 자들의 동네에서 살고 기생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얼굴 없는 테러를 가한다. 시골에서 올라와 몸을 팔아 시골에 돈을 보내는 아가씨, 성도착증에 걸린 노인, 미국 기업의 한국 사장의 딸, 땅 투기로 돈을 벌어 향락에 젖은 여인을 살해한다. 우리 사회에서 힘 있는 자들이 떼를 지어 사는 동네에서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그 사람들의 반향을 노리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단지 못 가진 자들이 가진 자들을 증오하고 혐오하는 단순한 도식이 아니라 이 사회의 천민자본주의(나는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작가나 사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에 대한 반격이고, 이런 병적인 증상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의도로 살인을 저지른다. 하지만 영향력이 막강한 압구정동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은폐하고 단지 못 가진 자가 가진 자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이라고 언론과 여론을 조장한다.


      일반 사람들은 범인이 잡히지 않고 계속 테러를 가하여 이 사회의 쓰레기들을 청소해 주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말한다. 예전에 신 아무개가 경찰에 잡힌 후 도둑질을 했다고 하는데 도둑맞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는 진풍경을 보며 사람들은 누가 도둑놈인지 모르겠다고 자조적인 냉소를 내뱉었었다.


      이 소설 1권은 그런 의미에 충실하며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2권은 이야기 구성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느슨해졌다. 마치 1권의 재탕이라는 생각이 든다. 1권의 뒷부분부터 독자들은 작가가 소설 속의 소설로 결말을 내릴 때부터 이 소설이 맥이 빠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2권에서는 소설이 현실로 나타나는 테러가 계속되면서, 테러리스트가 주는 충격과 의도보다는 오히려 작가의 위신 세우기에 더 열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의 의도가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을 꿈꾸는 테러의 교사자라면 소설을 읽는 독자는 테러리스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압구정동에 사는 사람들의 타락한 자본이든, 향락이든, 소비든 마음속으로 비윤리적일 수 있는 그들이 가진 것을 향하여 과격하고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테러를 한 번쯤을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힘이 아니라 단지 내가 가지지 못 한 것에 대한 동경이 증오로 변한 또 하나의 천박한 테러일 따름이다. 이 사회의 변화는 녹색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장기 기증 운동을 운영하는 사람들, 유산 안 물려주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처럼 막연한 바람이 아닌 실천하는 양심들에 의해서 바뀌어 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작가나 이 글을 읽고 공감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의 비윤리적인 자본주의적 행태를 변혁시키고자 한다면, 작은 실천을 통한 나눔 활동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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