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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사익을 만나다
    새와 나무 2018. 2. 12. 15:44


       

    장사익을 만나다

     

     

       시립국악단 정기연주회가 시민회관에서 열린다는 포스터를 보니 장사익이 특별 출현한다고 되어있다. CD와 영상으로만 접했던 장사익의 노래에서 받은 감동이 커서 직접 한 번 보고 싶었었는데 기회가 우연찮게 찾아왔다. 1층 앞좌석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첫 번째는 정통 궁중 음악인 수제천이라는 기악합주곡이었다. 품위와 격을 갖추고 느리게 연주되었다. 아악곡의 백미라고 하는데 엄격하고 엄정한 규율 속에서 살던 옛날 궁중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지루한 곡이었다.


      두 번째 시나위가 연주될 때 비로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걸 느꼈다. 우리 몸속을 면면히 흘러온 무속의 줄기가 내 몸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는지 무속으로 연주되던 시나위에 내면에서 조금씩 일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수천 년 조상의 핏줄 속에 축적되어 온 자연 숭배와 신에 대한 갈망이 굿 속에서 시나위 가락으로 접혼을 갈망했을 것이다. 그 가락을 듣자 몸 속 깊숙이 숨어있던 옛 혼들이 수초처럼 흔들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신을 영접하려는 작은 움직임이 핏줄 속에서 불씨가 되어 서서히 번져 가는 징후가 내 몸 속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무아지경에 이른 무당에게 신내림이 시작되고 시나위의 가락은 점점 뜨겁게 불을 지피고 있었다.


       시나위에 맞추어 살풀이춤을 추었다. 손과 발이 시나위 가락에 감응할 때마다 무대 위에 빛과 소리와 그리고 형상이 하나의 일렁임이 되어 정치한 자극으로 번져왔다. 인간들에게 가장 원초적인 몸놀림이 남녀의 결합이라면 인간과 신의 접속 역시 인간의 원색적이고 절실한 몸놀림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살풀이춤을 보고 있노라니 격렬하지도 격정적이지도 않은 여린 춤사위에 풍기는 게 무척 애로틱하다.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 가벼운 발놀림, 여린 어깨의 들먹임, 하얀 천, 푸르스름한 무대 조명까지 어느 것 관능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먼데 애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니 모를 일이었다. 신과의 접혼과 남녀의 결합에는 무아지경에 이르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2부에서 국악관현악의 공연과 민요에 이어 기다리던 장사익이 나왔다. TV에서 보았던 작은 체구에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 였다. 하지만 찔레꽃을 부를 때 그는 거인이 된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꾼으로서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때론 분출하는 용암이 되고, 때로는 얼음 위를 흐르는 차가운 폭포수가 되고, 때로는 흐느끼는 빗물이 된다.

    두 줄 해금의 애절한 탄식이, 일곱 줄 아쟁의 한스러움이 장사익의 찔레꽃에 화음이 된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노랫말처럼 그의 노래에는 굳었던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감정의 보를 터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음향기에서 잡아낼 수 없었던 미세한 감정과 소리 그리고 표정까지 객석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사로운 감정을 앞좌석에 앉아서 마음껏 누릴 수 있었기에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그게 내가 장사익에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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