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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쌓인 석굴암 앞에서
    새와 나무 2018. 3. 5. 14:26


    눈 쌓인 석굴암 앞에서

     

     

      외국을 여행하고 온 사람들에게서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외국의 문화재에 비하면 화장실만도 못하다는 식의 말들을 자주 들었다. 유럽, 중국, 동남아시아의 유적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유적은 그 규모가 소꿉장난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외국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 사람들의 말에 동조도 부정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문화재란 어느 것이든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 민족의 특성이나 개성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문화재를 관광할 때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는지 그걸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저 수박 겉핥기식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규모만을 보고 그 문화재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우리의 일반적인 관광 수준이 역사 유적을 찾아가서 사진이나 한 장 찍고, 먹고 노는 것에 더 관심을 쏟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먹고 노는 것에 지쳐 막상 유적을 돌아볼 때는 관광차 속에서 잠을 자거나 구렁이 담 넘듯이 대충 돌아보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관광 태도로는 어떤 유적이나 유물의 가치나 미적 아름다움을 찾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겨울에 다시 석굴암에 갔다. 먼저 불국사에 들렀다. 가기 전날 눈이 내려서 세상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다보탑의 여성적이고 섬세한 모습과 석가탑의 단순하고 남성적인 모습,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청운교와 백운교를 다시 둘러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상들의 예술적 혼과 솜씨를 잘 간직한 유적들을 다 이해할 수 없어 부끄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조상들의 미적 감각을 받아들일 바탕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이런 유적을 남긴 조상들의 후예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가는 길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구불구불한 길이 햇볕이 드는 쪽만 눈이 녹아 한 차선으로만 차가 다닌다. 석굴암 주차장에는 눈 속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와 있다. 방학을 맞아 단체로 여행을 온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외국인들도 더러 보인다. 주차장에서 석굴암으로 가는 길은 눈이 쌓이고, 눈을 들면 눈 덮인 산자락 끝으로 동해가 아스라이 보인다. 석굴암 전실 유리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본다. 희미한 조명으로 드러나는 전실, 비도, 주실 그리고 묵묵부답 초연히 앉아있는 석불의 조화에 젖어본다. 주실 바로 앞 두 개의 돌기둥과 위쪽의 무지개 돌에 가려 본존불의 모습만 보이고 뒤에 있는 제자들의 상이나 보살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좀 자세히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석굴암을 나서면서 생각을 한다. 석굴암 경내에 석굴암과 똑 같은 관광용 모형 석굴암을 만들어서 보이지 않은 전실, 비도, 주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경주 시내 사회과학원에 학술 연구용 모형이 있지만) 석굴암이 세계적 문화유산이라는 자랑을 하는 것도 좋지만 석굴암을 찾은 사람들이 석굴암의 예술적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런 시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다. 문화재는 좀 더 자세히 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인 석굴암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완벽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전실과 비도 그리고 주실에 있는 조각들까지도 형체가 안으로 들어 갈수록 완벽한 형체로 조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교의 윤회관에 따라, 일단은 전실을 중유(中有) 공간으로 가정해 보자. 중유 공간이라면 윤회와 윤회를 거듭하는 중간 단계로, 새로운 탄생을 예비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주실은 온전한 생명체들의 나라이고, 전실은 당연히 불완전한 생명체들의 나라로 보아야 앞뒤가 맞는다. 따라서 주실 안이 조각상들은 모두 완벽한 형체를 보이는 데 반해, 생명 이전의 단계인 전실은 조각상들은 불완전(!)한 미를 보이는 계 외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86쪽 성낙주)


       이렇게 깊은 뜻을 가진 석굴암을 소 닭 보듯이유리창 너머로 보는 것은 조상들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것이고, 우리의 유산에 대한 푸대접일 것이다. 때문에 석굴암 모형으로라도 그 예술적 의미를 알아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석굴암을 지금처럼 복원한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다. 그 후 석굴암의 모습이 잘못되었다는 학설들이 제기되었다. 전실의 구조가 지금처럼 전개형이 아니라 절곡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1909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굴암의 사진이 발견되어 석굴암에 대한 예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이번에 공개된 1910년 이전의 전실 남쪽벽 사진은 보수되기 전 석굴암 전실 세부를 찍은 최초의 촬영자료라는 점에서 전실 원형을 둘러싼 논란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전실 남쪽벽의 네 신장상 배치가 원래 일렬이 아니라 들머리 끝의 첫 번째 상(아수라)만 금강역사상을 마주보며 꺾여 있다는 사실이 사진을 통해서 확인되어 전실의 원형은 들머리 가장자리가 닫힌 절곡형이란 가설이 더욱 유력해졌다. (석굴암 전실 원형 절곡형유력 인터네 한겨레 2001-11-23)


       일제 때 석굴암이 보수 공사가 있었고, 전실이 지금의 모습을 한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 황수영 박사가 공사의 책임을 맡고 수리한 후라고 한다. 지금처럼 전개형을 주장하는 사람은 황수영 박사 외에도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의 저자 성낙주이다. 과연 그 사진이 세월에 묻힌 석굴암의 비밀을 밝혀주는 열쇠가 될 것인지는 전문가들의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일반인들이 석굴암을 관광할 경우 지금처럼 유리문 너머에서 잠시 머무르는 것은 세계문화 유산이라는 자화자찬이 자칫 자랑으로 끝나게 된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석굴암 주변에 석굴암의 모델을 만들어서 좀 더 깊이 있는 관광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문화재에 영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나서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진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직접 전실과 비도 그리고 주실을 지나며 거기에 서린 조상의 숨결과 예술, 종교적 비원과 염원을 느끼며 작지만 위대하고 아름다운 조상의 유산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기를 석굴암을 나서며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석굴암 앞에서 방문자의 이름을 적은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석굴암의 가치를 우리가 느끼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 석굴암에서 두 손을 합장하는 의미가 더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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