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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새와 나무 2018. 2. 1. 20:34
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종종 전문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다. 보여 지는 것들에 대한 표면의 아름다움에 지나치게 호감을 보이고, 독자들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다. 김훈의「자전거 여행」을 읽다가 그런 부분이 눈에 띄어 읽는 것을 중지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 햇볕 냄새가 난다. 흙향기도 난다. 아이들이 햇볕 속에서 놀고 햇볕 속에서 자란다. 이 아이들을 끌어 안아보면, 아이들의 팔다리에 힘이 가득 차 있고 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에서는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이 아이들은 억지로 키우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나는 아이들이다.
( 자전거 여행 287쪽)
글만 가지고 본다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따듯한 글이다. 자연 속에서 싱싱한 야생화 같은 향기를 가지고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유혹이 느껴질 만큼 잘 쓰여진 문장이다. 김훈 특유의 미문과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국민일보 한승주 기자 인터넷한겨레)이라는 찬사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암분교장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근무하는 학교다. 시인과 친구인 작가가 거기를 가끔씩 찾아가서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쓴 글의 일부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 체증이라도 앓은 기분이었다.
마암분교 어린이들 뒤통수에서 햇볕 냄새와 흙 향기가 난다는 말이 더하거나 보탬이 없는 진솔한 표현일까. 회색의 시멘트 건물에 둘러싸여 사는 작가가 자연에 대한 향수가 지나쳐 감정을 과잉 분출한 것은 아닐까. 도시 탈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현실 앞에서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막연한 연민과 애정의 표현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하는 건 아닐까.
여수에서 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어떤 분교장에서 3년 동안을 살았고, 초임 발령부터 10년을 섬에서 산 내 경험으로는 김훈이 작가가 쓴 부분을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 뒤통수 가마에서 악취가 난다. 서캐도 산다.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놀고 무관심 속에서 자란다.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문화적 빈사 상태로 심한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것 같다.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에서는 때에 전 고리한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지 못한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도시 아이들이 누리는 풍요와 문화적 결핍 속에서 자라다가 도시로 나가면 문화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탈선하는 아이들이 많다. 탈선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자연 속에서 얻은 것은 도시의 생활에서 그들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좌절하고 실망을 맛보게 될 앞으로의 생활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마암분교장은 작가의 순수한 시각으로 보면 감동의 삶이 될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결코 천국이 될 수 없다. 그 속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그 삶은 김훈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그저 산골 벽지일 뿐이다. 유혹과 탈선의 화려한 병원체들에 대한 방어력과 면역력이 거의 전무한 그 아이들이 살아갈 앞날을 생각하면 햇볕과 흙냄새에 그리 감탄할 것이 못 된다. 그 아이들은 어차피 도시의 아이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며 살아야 할 삶을 바로 앞에 두고 있다. 시골에서의 경쟁 없는 생활이 도시로 나갈 때 무기력한 삶의 실체로 변할 가능성이 더 많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섬에서 아이들과 오랫동안 생활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글에 같이 감동을 나누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들이 모두 칭찬을 넘어 경탄에 가까운 수준이라서 그렇다.
그의 문향(文香)은 아찔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의 글의 매력은 한갓 장식과 수사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독자는 거의 종교적 법연과도 같은 ‘깨달음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최재봉 인터넷한겨레)
글이란 때때로 그 글의 당사자나 체험자들이 읽을 때는 작가의 시각과 전혀 다른 실망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바라보는 사람과 바라보임을 당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과 연민은 엄연한 경계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글을 나 혼자서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고 하려니, 좋은 글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사시를 가진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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