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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의 사람들(구례 하동)새와 나무 2018. 1. 18. 14:16
섬진강변의 사람들(구례 하동)
태풍이 지나며 폭우를 뿌리고, 강풍으로 빗질한 섬진강의 풍경은 유난스럽게 정갈하다. 오랜만에 강둑까지 몸을 부풀린 풍요로운 강이 되어 새로운 물이 흐른다. 언제라고 새로운 물이 아니었을까마는 바닥을 드러낸 채 야위어 흐르던 강줄기일 때는 단지 명맥을 이어갈 뿐 새롭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사람이 넉넉한 모습으로 살아야 사람다운 품격이 느껴지듯이 강도 역시 풍요로운 물줄기로 도도하게 흘러야 새롭게 흐른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넉넉하게 불어난 섬진강은 기운차게 달리는 열차처럼 힘 있고 빠르게 흐르며 지리산 자락을 흔들고 있다.
지리산을 휘감아 도는 강물을 먼저 보내고 사성암(문척면 오산에 있는 암자)에 올라 좌선암 위에 앉으면 구례읍과 강물이 하나 되어 흐르는 모습을 굽어볼 수 있다. 옛날에는 거기에 진각(眞覺) 국사가 앉아 매일 오경에 게송을 읊으면 10 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섬진강의 국도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역류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랴. 깨우침과 삶이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삶 그 자체인 것을……. 좌선암에 앉아 눈을 감고 잠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가만히 눈을 뜨면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과 강물 속에 자신의 삶이 새롭게 돋아나는 잎들처럼 경이로운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성암에서 내려와 산기슭에 무수히 서 있는 밤나무에서 쏟아진 햇밤을 주워 씹으면 입안에 스며드는 떫은맛과 단맛이 함께 느껴진다. 좌측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끼고 돌아가며 끝없이 이어지는 밤나무 숲 아래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밤을 줍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일상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다. 한 알의 밤을 줍기 위하여 산비탈에서 허리 숙여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경건하고 검소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구례 간전면을 지나 광양군으로 이어지던 밤나무가 사라지고 매화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광양의 매화 마을이다. 길가 매화 판매점에 들러서 몸에 좋다는 매실 엑기스라도 한 통 사면 섬진강 사람들의 삶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봄이라면 잠시 발을 멈추고 매화향기 녹아드는 섬진강가에 앉아 뱃노래라도 한 구절 읊조리며 사라진 나룻배를 생각하는 것도 좋으리라. 아니면 숱한 전란 속에서도 꿋꿋이 섬진강을 지키며 살아온 이 땅의 조상들을 생각하고, 섬진강에 스며든 그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노라면 섬진강물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백성들의 죽음도 받아들여 소리 없이 흐르고, 삶의 젖줄로도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가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온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주인임을 생각하게 된다.
매화 마을을 지나 백운산 기슭에서 야생차를 생산하는 녹차 마을을 지나게 된다. 섬진강의 부드러운 물길과 백운산의 정기로 자란 차의 잎을 모아 정성을 들여 덖어낸 차 한 잔을 마시며 생활에서 더러워진 몸을 씻을 수 있다.
다압면을 지나 섬진강은 하동으로 이어지며 길었던 물줄기가 바다에 이른다. 하동으로 들어서서 이번에는 반대쪽 길로 접어들면 배나무 밭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길가에 배를 상자로 쌓아 놓고 지나가는 길손에게 ‘신고배’를 맛보고 가라고 권한다. 편안히 앉아 깎아주는 배 한 쪽을 먹어보면 배의 속살 구석구석 스며든 것은 과즙이 아니라 지리산 깊은 계곡과 섬진강이 품어 안은 실개천의 물줄기임을 느끼게 된다.
입 속에 감도는 맛이 채 가시기 전에「토지」의 무대였던 평사리에 이른다. 양반의 덧없는 몰락과 인간의 간교함을 자아냈던 토지의 무대인 너른 들판을 본다. 지리산 끝자락의 마지막 안식처인 마을 터를 돌아보며 인간의 탐욕도 사랑도 평사리 한 줌 흙에 미치지 못하는 부재의 허망함을 맛본다. 인간의 삶이 제한적인 세월 속에 잠깐 살다가 부침하는 티끌 같은 존재임을 가슴 아파한다. 길가 식당에서 재첩국물을 한 사발 들이키며 강물 속에 들어가 삶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직시해 본다.
곧바로 화개장터와 만난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로 꽃 피우며 물건을 사고팔던 5일장이 서던 곳이다. 지금은 쌍계사로 가는 길손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밥 팔고 잠자는 집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강물을 오염시키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졌다고 섬진강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까지 그 흐름을 멈출 수는 없으리라.
쌍계사 국사암에 들러 경건한 마음으로 잠시 명상이라도 하고, 화개 찻집으로 내려와 전통을 이어가는 차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피아골에서 흐른 물줄기가 잠시 쉬어 가는 연곡사 앞뜰에서 지리산 바람에 실려 오는 목탁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구례로 접어들면 하동 쪽에 늘어서 있던 유흥업소들도 사라지고 섬진강이 아직은 수줍은 처녀처럼 음전하게 흐르고 있다. 구례에 들러 반찬이 33가지나 나오는 산채 정식을 팔천 원에 맛보고 구례교 위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면 섬진강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섬진강가에 서서
이념의 깃발 아래 죽어간
죄 없는 백성들의 원혼이
아우성이 되어 피아골 적시고
국토의 실핏줄 되어 흐르는
작아도 힘찬 장수 수분재와 지지 계곡 채우고
맵짠 순창들 시작되는 강천사 개울 따라 흐른 물
하나로 모여 소리 죽여 흐르는 섬진강을 보라.
백두대간의 마지막 꿈틀거림이
지리산 너른 품안을 샅샅이 누비며
겸허한 모습으로 돌아온
노부의 평온한 눈빛으로
하동포구 뱃노래로 흥을 돋우는 강가에 앉아
섬진강 속속들이 새겨진 아픔과 고뇌를
귀 기울여 보라.
임진년 왜놈의 말발굽, 동학혁명의 분노
6.25의 비극, 4.19의 희망, 5.18의 좌절
그 많은 도전과 시련에
죽음과 삶이 엇갈린 분노와 희열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아온 섬진강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을 강물을 보라.
미워하고 시기하고 증오하며 살아온 오랜 세월
이제는 강물에 사랑으로 씨앗을 심고
은어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만나
강물을 따라가며 더도 말고 섬진강만큼으로 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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