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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만추
여름 더위를 피하려고 문종이를 뜯어낸 곳이 춥다고 어머니는 지난밤에 문에 돗자리를 쳤다. 그러고도 춥다고 전기장판을 켜놓고, 보일러도 작동 시켰다. 아버지의 산소에 다녀와서 어머니의 방문에 물을 바르고 묵은 창호지를 뜯어냈다. 잘 벗겨지지 않아서 칼로 긁어내기도 했지만 붙어 있는 조각들을 완전히 뜯어내지는 못했다. 문을 뜯어 수도 옆으로 가서 충분히 불린 다음 완전히 뜯어내려고 하였더니 어머니가 그냥 붙여두고 바르라고 한다. 어머니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이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굳은 상처가 되었듯이 조각들은 한사코 어머니의 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들을 완벽하게 벗겨내려면 문에 흠집이 생기도록 칼로 긁어내야 할 것 같아서 그만 두고, 외과 의사가 암 환자의 암세포를 완벽하게 잘라내지 못하고 수술 부위를 덮어버리듯 묽은 풀을 발라 창호지를 대충 붙여버렸다.
어머니의 창문은 아직 가을이 오기도 전에 벌써 겨울 추위를 타고 있다. 80년 세월이 어머니의 체온을 온전하게 남겨두지 못하고 낡고 헐거운 피부 사이로 선선한 바람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가 보다. 아마 지난밤에 어머니의 가슴에는 무서리가 허옇게 내렸는지도 모른다.
뜨겁게 달구어진 어머니의 여름은 거머리, 모기, 벼룩, 빈대 같은 해충들에게 물린 피부의 자국처럼 삶의 온갖 상처가 얼룩진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 시련은 어머니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멍에 지워진 운명의 굴레였다.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지난하게 살아야 했던 삶은 어쩌면 도도한 운명의 흐름을 거스르는 강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로서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오로지 생활 전사로 나선 투쟁 같은 것이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때로는 자탄과 서러움에 조용히 안으로 삭이지 못하고 가파른 절벽으로 추락하는 물줄기처럼 큰 소리로 울었을 것이다. 천장으로 스며드는 빗물처럼 어머니의 다리로 찾아오는 통증은 얇은 창호지를 뚫고 구멍 난 차양에서 밤 내내 앓는 소리를 냈다.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선잠 자는 막내아들에게 말이라도 걸어야 어머니 마음은 허전함을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통이 심해지는 신경통보다도 더 어머니를 아프게 하는 것은 믿었던 자식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겹쳐서 일어나는 서러움일 것이다. 어쩌면 먼저 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어머니의 방문에 이는 시원한 소슬바람에도 겨울 칼바람처럼 뼈마디를 시리게 하는지 모른다.
어머니를 위로하는 서툰 말을 준비하지 않은 나는 빈다. 꿈속에서나마 전북 지방 문화재로 지정된 외할아버지의 생가가 있는 외가에서 화려하고 당당한 양반의 딸로 귀염 받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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