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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인이 되지 못 하는 이유
    새와 나무 2018. 1. 15. 20:11


    종교인이 되지 못 하는 이유

     

     

       종종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교회에 나오라는 권유를 받는다. 어떤 사람은 한두 번이 아니고 집요하게 권유를 하여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그래도 포기를 하지 않고 권유를 하다가 나중에는 화를 냈다. ‘너를 위해서 그만큼 권하면 권하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 교회에 나와야 할 것 아니냐?’고 하며 나를 난처하게 했다.

       

      가끔 길거리에서 전도를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비좁은 차안이나 역 대합실에서 전도에 열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초인종을 눌러서 나가보면 전도를 하는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서 끈질기게 교회에 나오라고 위협 비슷한 설득을 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학교 교문 옆에서 장애인 한 사람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방에 무얼 넣어 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무얼 하는지 궁금하여 한 번은 그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이 나누어주는 것은 하나님을 소개하는 쪽지였다. 또 토요일에는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나온 아줌마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다.

     

      기독교 인구가 천만을 넘는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불교의 신도수도 천만이 된다고 하니 부처님의 자비가 충만한 나라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종교의 위기가 왔다고 한다.

    그 이유가 뭘까. 첫 번째는 패거리의 형성일 것이다. 교회와 절 안에서만 동질성을 확인하고 문을 나서는 순간 신도가 아닌 사람은 저주의 대상은 아니더라도 동고동락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남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폐쇄주의와 배타성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어렵게 만든다.

     

      두 번째는 외형 불리기에 급급하고 종교의 근본정신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화려하고 거대하게 몸체를 불리는 교회의 건물만큼이나 신도 수 불리기에 급급하고 있다. 신자가 많아야 좋은 교회와 좋은 절이 되는 세상이다. 종교가 하나님을 믿든, 인간 스스로 깨우치든 중요한 것은 외피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튼실하게 닦아서 사랑과 자비에 충만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천당이나 극락은 사후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선행으로 이루는 마음의 평온이라고 믿는다. 외형의 모습을 부풀리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 종교라면 이미 중세에 종교의 교훈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절이나 교회에 종교가 있다고 잘못 알지 말아라. 어떤 종교든지 조직화되고 제도화되면 종교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

     

       세 번째는 물질 지향적 종교관이라는 것이다. 교회든 절이든 가난한 사람은 환영을 받지 못한다. 외형을 부풀리는데 가난한 신자가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종교가 가난과 부에 민감하게 작용할 때 이미 종교로서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마저 돈에 의해서 신자의 가치가 평가된다면 종교가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네 번째 교회 안에서 자식에게 권력의 승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버지였던 목사가 자식에게 목사 자리를 물려준 교회는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참된 종교인의 길을 갈 수 있을는지. 조계종의 감투싸움도 그 본질은 물질에 있다. 종교가 권력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집단주의로 위력을 더해 가는 한 진정한 종교의 길은 멀다고 할 것이다. 종교가 일반 사람들과 다름없이 물질과 감투에 연연하고 어떻게 종교 본래의 교리에 충실하며 이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할 수 있겠는가.

    김동춘은 이런 말을 한다.

     

       교회의 정치가 세속의 정치를 능가하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돈벌이와 영혼 장사로서 교회 활동은 정치의 영역 밖에서 가장 철저하게 정치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탈정치시대의 정치)

     

      물론 참 종교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를 외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던져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해서 바르게 섬기는 것이라고 함)과 섬김(기분과 변덕에 좌우되지 않는 섬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섬김. 대상을 고르지 않는 섬김. 말없는 지속적인 섬김)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아직 종교를 가지지 못했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교리대로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를 단지 삶의 한 방편으로 받아들인다면 구태여 종교를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종교를 가진 것이 삶에 대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삶의 짐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자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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