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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새와 나무 2018. 1. 9. 21:58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
6.25가 휩쓸고 간 이 땅의 농촌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중에서 배고픈보다 긴박하고 절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이식위천’(以食爲天), 즉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 45쪽 김동춘)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 음악과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부르는 동요가 고작이었지만 그것도 정상적으로 수업을 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났을 때나 가능했다. 담임선생님이 음악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는 음악이 다른 과목으로 변하거나 가끔 교환 수업을 할 때 다른 선생님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어쩌다 라디오에서 고전 음악이 나오면 어른들은 시끄럽다고 라디오를 꺼버리고, 유행가가 나올 때 어른들과 같이 듣는 경우가 고작이었었다. 중학교에 가서야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이 없는 나는 음악에 흥미를 가지지 못했고 단지 음악 선생님이 친절하고 예쁜 여자 선생님이라는 점에서 음악 시간을 기다렸을 뿐이었다.
음악에 대한 영양부족 상태에서 자란 나는 아직도 고전 음악을 들을 때 그 양식이나 형식 심지어 악장의 구분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곡의 흐름을 잘 구부하지 못하는 청치(聽癡)가 되고 말았다. 물론 내 자신이 음악에 대한 선천적인 받아 내림이 없었다는 것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
원래 고전 음악의 탄생이 귀족들을 위해서 만들어 졌고, 귀족들의 앞에서 연주되어지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거기에 걸맞는 음악적 소양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연주회에서도 형식과 격식을 갖추는 품격이 필요하였다. 요즘이야 어느 가정이나 오디오가 있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고전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연주회에 가서 직접 연주를 들으려면 적지 않은 돈을 주어야하는 고전 음악은 서민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음악이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곡이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이다. 전곡이 아니고 2악장만 나와 있는 곡인데 빌헬름 켐프 피아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페르디난드 라트너가 지휘를 하는 곡이다.
반주가 먼저 기대감을 주는 분위기를 잡은 다음 완만한 골목을 막 감아 돌면 나타나는 선명한 가을 하늘빛에서 챙하고 속을 드러내는 석류처럼 맑고 명징한 피아노 소리가 숨을 멈추게 한다. 반주 속에서 튀어나오는 그 첫 음이 무슨 음인지 나는 모른다. 음을 감지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음이 내게 주는 느낌은 좁아진 혈관 속에 신선한 산소가 공급되듯 무딘 청각을 일깨우는 자극으로 다가온다. 나처럼 고전 음악에 먹통인 사람도 그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게 되니 그 음악을 지휘하고 연주하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카라얀이 지휘하고 알렉스라는 사람이 피아노를 친 같은 곡의 2악장을 들으니 앞에서 들은 그 곡의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카라얀이 지휘한 2악장에서는 피아노 소리와 반주 소리가 한데 뒤범벅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봄날 들판에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서 어느 하나가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라 꽃들이 무더기로 인식되어지는 듯하였다.
어떻게 연주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모르지만 내게는 카라얀의 지휘로 연주되는 곡보다는 페르디난드 라트너의 지휘로 연주되는 곡이 감동을 주었다.
20세기에 가장 탁월한 지휘자라고 일컬어지는 카라얀의 곡을 내가 어떻다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지만 느낌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가 이런 평가를 받는 위대한 지휘자일지라도.
카라얀은 레코딩의 기술적 변화를 모두 예측하고 있었다. 그의 음반은 살아 있는 동안만도 9백여 종이 발매되었으며 총 판매량은 1억 1천 5백만 장에 달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매년 40억 원에 육박하는 로열티를 챙길 수 있었다. 그가 죽은 후 남긴 유산은 1천 7백 50억 원이 넘었다. (전설 속의 거장 105쪽 조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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