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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귀신
예나 지금이나 복날이 되면 남자들은 보신탕집으로 가서 땀을 흘리며 개고기 먹는 것을 즐긴다. 개는 사람과 한솥밥을 먹고 자라서인지 다른 짐승에 비하여 유난히 사람을 잘 따르고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충성을 하는 가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몸보신을 하기 위하여 충성스런 개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개를 먹는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사람들의 공통적인 음식 문화인 듯하다.
사람들 중에는 개고기를 먹으면 부정을 탄다고 먹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고, 여자들은 먹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동물에 대한 연민이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자보다는 여자가 선천적으로 강한 듯하다. 개고기를 먹든 안 먹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옳고 그르다고 말할 생각은 없고 개고기를 먹고 일가족이 몰사하는 기이한 사건을 본 적이 있다. 섬으로 발령을 받고 일 년이 지난 어느 겨울날이었다. 아마도 정월 대보름이 가까운 시기였을 것이다. 어느 가정에서 기르던 개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정든 개를 잡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간절히 부탁을 했다. 아버지는 그저 아이들의 투정쯤으로 생각하고 개를 잡았다. 이상한 일은 그날 저녁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딸아이 셋이 그때 집에 있었는데 한 아이가 밤중에 일어나서 갑자기 개 짖는 흉내를 내며 입에 거품을 물고 빈사 상태에 빠졌다. 놀란 어른들은 면소재지 보건소의 공의에게 연락했다. 젊은 공의가 달려갔지만 아이는 손도 쓰지 못하고 죽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며칠 사이에 두 딸이 똑같은 증상으로 죽었다. 동네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하였고, 학교는 교육청으로 연락하고, 면사무소는 군청으로 연락하고, 군에서는 도청으로 연락을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몹쓸 전염병이나 사람을 잡아가는 개 귀신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여수로 피신시키기도 하였다. 사건은 멈추지 않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화병으로 죽었다. 아이들 셋을 보내고 죄책감에 스스로 죽었는지도 모른다. 마을의 인심은 점점 흉흉해 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다. 토요일까지 건강하게 학교에 잘 나왔던 우리 반 아이가 월요일에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 말이 죽었다는 것이다. 죽은 아이는 남자 아이였고 사건이 생긴 집하고 빤히 보이는 거리에 있다고 하였다. 그날 일과가 끝나고 그 아이의 집으로 찾아갔다. 마을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마을 어귀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의 집을 몰라서 우리 반 아이 하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니 아이의 아버지가 못 가게 하였다. 그만큼 두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따라오던 아이가 되돌아가면서 가리켜 준 길을 따라 그 아이의 집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그 아이의 집 곁에 있는 집에서는 무당이 굿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기 집으로 불행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굿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의 집안은 참척의 아픔으로 정적에 잠겨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주를 한잔 따라주며 하는 말들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은 괴기한 것이었다.
우리 아이가 했던 말입니다. 지난가을 운동회 연습을 하고 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져서 잘 보이지 않는데 저기 동네 입구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 아이를 업어서 데려다 주겠다고 등에 업더랍니다. 어디로 가는데 갑자기 개가 심하게 짖자 그 사람이 우리 아이를 내려놓고 어디로 가버렸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가 갑자기 죽은 이유는 그 개 귀신이 데려 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귀신이 붙었다고 우리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에게 소주 한잔을 권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련의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더는 사람이 죽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도청에서 보낸 의료조사단이 와서 이것저것 조사를 했지만 납득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 아이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 한 구석이 납덩이처럼 가라앉았다.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일이 왜 일어났는지모른다. 보신탕 논쟁이 있을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난다. 세상에는 아직도 과학이나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인간은 아주 작은 지식에 지나치게 오만해져서 어쩌면 자연에서 일어날 대재앙이나 환난을 망각하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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