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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향리
    새와 나무 2017. 12. 22. 15:20


    매향리

     

     

     

       1618년 광해군(10)이 왕으로 있을 때 명나라가 누르하치를 친다고 원병을 요구했다. 그 요구의 명목은 재조지은(再造之恩)이었다. 즉 임진왜란 때 조선에 대하여 베푼 은혜를 갚으라는 것이었다.(광해군. 한명기. 196) 할 수 없이 강홍립을 대장으로 하여 1만 명의 원군을 파견하였으나 심해전투에서 투항을 하여 후금의 포로가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1만 명의 군인들을 뽑아 보내고 마을에는 늙은이나 병자들만 남았다고 한다. 남은 사람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비참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을 나타내는 이민성이라는 관헌이 쓴 시에 그 당시의 비참한 실태가 잘 나타나 있다.

     

    눈덮인 빈 산에

    한 줄기 오솔길 뻗어 있어

    외지 마을에 저문 연기 오르는데

    방아찧는 소리 드물더라

     

    ……

     

    우리 몇 식구

    도토리 산나물로 연명하니

    몸은 야위고 기운이 빠져

    팔다리도 말을 듣지 않고

     

    목숨이 모질어 살아 있지만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지요

    차라리 지금 눈이나 감아버리면

    다시 무슨 근심 걱정 있으리오

    (숙봉산동촌<宿鳳山東村>의 일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당시의 사회상이 잘 드러난 시이다. 백성들이 전쟁으로 인하여 오죽 힘이 들었으면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다고 하였겠는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순박한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온갖 세금과 노역으로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비참한 사회상을 생각하면 울분이 치솟는다.


       옛날에는 왕정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21세기를 맞은 오늘에도 우리가 정말 독립된 국가인지 의심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6.25 전쟁 중인 1951년부터 시작된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의 농섬과 해안가 일부의 미공군사격장(쿠니사격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일 40여대의 폭격기로 14시간 동안 400여 회의 폭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인터넷 munhwa/2000513)

       ‘추적 60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매향리가 치열한 전쟁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군 폭격기들이 굉음을 내며 농섬에 폭탄을 투하할 때 폭음과 먼지는 6.25를 다시 보는 것 같다. 그 아래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50년 동안 주민들이 소음, 폭탄이 터지는 불안감, 오폭, 환경오염 등으로 인하여 받았을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상상하고 남음이 있다. 폭격이 시작된 이후 23명이 자살을 하고, 30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

       매일 계속되는 폭음에 시달리는 고통을 참다못하여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다. 국가가 언제 우리들을 생각해 주었느냐는 것이었다. 매향리 사람이 아닌 일반인의 관점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50년 동안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었다.

       문제는 정부와 언론의 태도다. 이런 피해가 전시가 아닌 평상시에 일어나고 있었는데 언론이 그간 이런 문제를 심층보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언론이 국민들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모른 채 해온 이유를 알 수 없다. 미국과의 외교적 문제 때문인지 정부의 통제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민주국가의 언론이 가질 태도는 아니다.

    또한 미공군의 폭격이 불가피하다면 주민을 이주시켜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더욱이 이해하기 힘든 것은 주민들이 생존권을 주장하며 시위를 하자 대표자(전만규 씨)를 잡아다가 재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에게 폭격으로 인하여 살 수 없다고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하는데 무슨 죄목(군사보호법 위반 혐의)으로 재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민들의 시위가 미국과의 외교적인 문제가 있다면 시위를 막는 한계가 명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주장을 토대로 미국을 압박하여 보상을 받아내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국가가 국민의 목숨과 생존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국가인가. 적극적으로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하면 이들을 다독이고 이들의 편의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광복 55주년이 되었어도 진정한 자주독립국가가 되지 못하고 우리 영토에서 다른 나라의 폭격기가 굉음을 내면서 폭탄을 투하하여 국민들에게 피해가 생기고 있다는 현실이 답답하다. 또한 울분을 참기 어렵다. 진정한 자주독립은 언제이고, 정부가 국민의 복지와 삶의 질을 진지하게 배려하는 날은 언제일까.

     

    2000.08




                     * 현재는 미공군사격장이 이전을 하였고 사격의 잔해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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