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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과 교회의 종소리
    새와 나무 2018. 2. 20. 15:45


    절과 교회의 종소리

     

       우리 아파트 뒤에는 절과 교회가 이웃하고 있다. 절이 있던 자리 위로 교회가 몇 년 전에 들어섰다. 그 후 새벽이면 두 개의 종소리가 들렸다. 높은 음을 가진 교회 종소리와 낮은 음을 가진 절의 범종소리를 연이어 들으며 잠을 깰 때가 많았다.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어울림. 새벽을 일깨우며 울리는 소리. 이보다 절묘한 조화가 또 어디 있으랴. 교회와 절은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적대시하는 사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른 새벽 두 종소리가 완벽한 조화로움으로 새벽을 두드리고 있다. 교회와 절이 완벽한 화해를 하고 있으니 이보다 좋은 벽허물기의 만남이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두 종소리는 마른풀에 잠든 새벽을 깨우는 바람처럼 가슴을 일깨운다. 교회의 종소리는 좀 더 부지런한 일깨움의 높은 소리로, 절의 범종소리는 낮은 음성으로 성불을 향한 울림으로 어리버리한 인간의 새벽을 깨운다.


       신영복 선생님은 교회와 절의 종소리를 이렇게 차별하고 있지만.

     

       교회종이 새벽의 정적을 휘저어놓은 틈입자(闖立者)라면, 꼭 스물아홉 맥박마다 한 번씩 울리는 범종은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처럼, 오히려 적막을 심화하는 것입니다. 빌딩의 숲속 철제의 높은 종탑에서 뿌리듯이 흔드는 교회 종소리가 마치 반갑지 않은 사람의 노크와 같음에 비하여, 이슬이 맺힌 산사(山寺) 어디쯤에서 땅에 닿을 듯, 지심(地心)에 전하듯 울리는 범종소리는 산이 부르는 목소리라 하겠습니다. 교회종소리의 여운 속에는 플레시를 들고 손목시계를 보며 종을 치는 수위의 바쁜 동작이 보이는가 하면, 끊일 듯 끊을 듯 하는 범종의 여운 속에는 부동의 수도자가 서 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교회의 종소리는 날카로운 금속성으로, 범종소리는 목쉰 사내의 칙칙한 음성으로 들릴 때 두 소리는 새벽을 망치는 소리였고, 모자라는 새벽잠을 깨우며 무자비하게 울리는 종교인들의 소음이었다깊은 노을빛이 구름에 걸릴 때 호남벌에 맑고 묵직한 여운을 길게 남기며 이어지던 어릴 적 상주사의 범종소리가 아니었다. 또 면 소재지 교회의 높은 종루에서 울리어 들판으로 전해오며 일렁임을 가라앉히던 종소리도 아니었다. 어느 날 그 소리가 소음이 아닌 위안과 평온을 주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하였다. 씻기지 않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삶에 대한 회의가 깊어갈 무렵 두 종소리는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로 변해 있었다. 심란함으로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 있을 때 교회의 종소리는 주기도문 소리로, 범종소리는 반야심경을 외우는 소리로 들렸다. 귀로 들을 때는 소음이었지만 가슴으로 느낄 때는 화음이었다.


       송광암 수련회에 참가하여 새벽 예불 시간에 범종에 몸을 스칠 만큼 근거리에서 108배를 하며 듣던 범종소리의 놀라운 공명과 여운은 수도자가 아닌 속인에게도 일상에서 찌든 때를 훑어 내리고 뒤흔들어 놓는 울림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가르침이었고 깨우침을 주는 소리였다. 또 어린 시절 교회에서 울려나오는 찬송가와 교회종소리는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하게 마음을 감싸주는 소리였던가.


       새벽 기도를 마치고 경건한 마음으로 종 줄을 잡아 당겨 종을 울리는 사람의 신앙심이 아니고서야 어찌 신 새벽을 깨울 수 있으며, 구도자의 깨우침을 향한 일념이 아니고서야 지상의 중생들을 일깨우는 범종소리가 어찌 울릴 수 있겠는가. 교회의 종소리이든 절의 범종소리이든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구원과 위안을 주는 성경한 울림임에 틀림없다.

       요즘 새벽에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 아마도 교회에서 소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새벽에 종을 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가슴으로 범종소리와 함께 교회의 종소리를 새벽마다 느끼고 싶다. 새벽마다 두 화음으로 어지럽혀진 몸을 씻고 정갈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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