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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연과 얼레지꽃(천자암)
    그곳에 가면 2018. 4. 25. 14:50


    인연과 얼레지꽃(천자암)

     

     

            봄이 깊어지고 있다. 아파트 건너편 오리나무 숲에서 번지기 시작한 연두색은 이제 어디에 눈이 마주쳐도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색깔들로 무더기무더기 드러난다. 삭풍과 한기에 죽은 듯 서 있던 나무들이 미세한 호흡으로 물줄기를 뿜어 올리며 마디마디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봄이 되어도 새순을 피어 올리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선물이라도 주려는 듯.

    작은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조계산 천자암으로 얼레지꽃을 보러 나섰다. 작년 이맘 때 그늘 아래 잔설이 채 녹지 않은 그늘에서 앙증맞게 하늘거리는 게 너무 깊게 각인이 되어 다시 찾아 나섰다. 작년 보다 조금 늦은 계절이라서 얼레지꽃이 다 시들지 않았을까 염려를 하며, 음지 어느 한구석에 조금 게으른 녀석이 있어서 나를 기다려주었으면 하는 조금 뻔뻔한 생각을 했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구례의 산수유, 진해의 벚꽃, 광양의 매화, 영취산의 진달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 땅 어느 구석 빠짐없이 그늘진 담 밑에서 시작하여 하늘 아래 마지막 산등성에도 꽃은 피고 있다. 축제가 열리는 곳마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모여들고, 화사한 꽃에 취한 얼굴마다 즐거운 표정들이다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체의 겉모양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사람들이 시달리는 일상을 벗어나 꽃과 하나가 되고, 내면에 숨은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기에 꽃 앞에 서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을 갈 때 떼지어 가면 생각은 제약을 받고 시야는 한정된다. 호젓한 산길을 홀로 걷노라면 꽃과 숲은 더욱 섬세한 모습까지 보인다.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바로 넘어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들끓지만 천자암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이 없다. 얼레지꽃은 거기에 있다. 촘촘한 산죽의 그늘 밑에, 바위 사이 뿌리내릴 공간이 없을 것 같은 틈새를 비집고 순하고 맑은 모습으로 보라색 꽃을 피운다. 잎이 먼저 돋고, 꽃이 아기새의 부리 같은 머리를 치켜든 모습을 마주할 때 가파른 산길을 오른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행운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런 얼레지꽃을 보고

    해토머리 습기가 잔뿌리 간질이는/오랜 그리움이 내 젖망울 돋아나게 했습니다라고 시를 쓰는 김선우는 참 멋진 여자다.



      얼레지꽃을 보고 김밥을 먹을 때 왠지 뱃속이 불안했다. 천자암으로 가서 주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얼레지꽃을 보는데 배가 더욱 불안하여 화장실을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화장실로 갔더니 화장실 앞에 한 스님이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앉아 문짝에 붙은 글씨를 열심히 적고 있다. 미안하다고 하자 스님이 일어서서 비켜준다.


       화장실에 앉아 일을 보면서 문에 붙은 종이를 보니 마음을 다스리는 글이라고 적혀있다. 평소 학교에서 화장실에 명언들을 붙이는 걸 보면서 속으로 똥을 누러 왔으면 똥이나 누게 놓아 둘 일이지 하며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얼레지꽃을 보러왔다가 배를 잘못 간수하여 화장실에서 그 값을 치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처님이 스님을 시켜 밖에서 경비까지 서게 하고.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한 구절 외웠다. ‘불법은 이론이나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허공이 무서운 것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옳게 외우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문을 열고 나오자 스님이 다시 화장실 앞에 코를 싸쥐고 앉아 다시 열심히 적고 있다. 스님이 앉은 화장실 문에는 종이가 두 장이 더 붙어 있다. 무슨 전생의 인연이 있었기에 나의 구린내를 참아가면서 글을 베끼고 있는지 어리석은 중생은 궁금하기 그지없다. 전생에 나한테 돈이라도 빌려가고 갚지 않아서 이승에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고서야 오염된 중생이 막 내지른 똥에서 나는 독한 구린내를 참아가며 그 일을 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아니면 내게 깨우침을 주려고 부처님이 스님의 고행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스님은 웃는 얼굴로 그 고행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별스런 인연도 다 있다는 생각을 한다. 먼 곳에서 만행을 나선 그 스님은 구린내로 보시를 받아야하는 업보인지 모르겠다. 지난 일요일 TV에서 보니 동자승 그림으로 유명한 원성 스님이 만행에서 광양 다압에서 매실 음식으로 보시를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복이 달라서 중이 되어도 유명한 사람이 있고, 중생으로 살아도 핍진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으니 다 전생의 업보라고 할밖에. 비록 거기가 구린내 나는 화장실 앞일지라도 스님은 거기가 천국이고, 나는 화장실 앞 얼레지꽃 핀 비탈이 천국이니 서로가 느끼는 장소만 다를 뿐 느끼는 근본은 같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나는 속세의 중생, 그 스님은 불제자라는 차이가 있을 뿐. 오늘 얼레지꽃을 찾아 나선 길에 이렇게 이상한 인연 하나를 맺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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