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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어도, 노인을 위한 빵집은 있다그곳에 가면 2018. 7. 5. 14:1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어도, 노인을 위한 빵집은 있다
Sailing to Byzantium
예이츠
저 세상은 늙은이들이 살 곳은 아니야,
자 보렴, 젊은 것들은 짝을 지어 껴안고 있고
숲속의 새들은 짝을 찾느라 연신 지저귀고 있잖아,
어디 그뿐인 줄 아니? 저 죽어가는 것들을 봐!
산란하기 위해 수 천리 물길을 찾아온 연어는
물살 거센 폭포를 거슬러 오르고,
바다에는 고등어가 짝을 짓느라 득실대고 있잖아?
저 모든 것들, 사람이나 물고기나 짐승이나 새들이나 모두
그저 배고 태어나고 죽는 저 일에 몰두해 있지 않니?
그저 본능 아니 관능의 음악에 취해 있을 뿐
세월 속에 변치 않는 지성의 기념비 같은 것에는
그 누구도 관심조차 없지 않니?
그러니 이곳은 나와 같은 늙은이를 위한 세상이 아니라
저들의 세상이 아니겠어?
(Sailing to Byzantium의 2연)
나이 들어 세상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새벽에 집 아래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새벽 일찍 길가에 모아놓은 박스를 줍는 여자 어르신이다. 오늘 새벽에는 비가 내렸는데 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박스를 모아 손수레에 싣고 있었다. 그 사람이 기초생활대상자로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고 있는지, 자식들은 있는지, 용돈이라도 벌어보려고 박스를 줍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새벽마다 박스를 줍고 있고 비가 내리는 날에도 어김없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 노인들이 처한 한 단면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자식이 있어도 자식에게 생활비를 받지 못하는 노인, 자식이 없어서 생활비가 부족한 노인,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도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많이 있다. 언론에서 발표되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 극빈층이라는 할 수 있는 사람들이 45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중 대부분이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전적으로 그렇고 일상생활에서도 나이든 사람들은 요즘 젊은이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디지털 시대에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에 대해서 어두울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으로 은행거래, 상품 주문, 음식 주문 등 거의 모든 일상을 해결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아이들 중심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식과 같이 산다는 것은 외계인과 같이 사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관심이 다르니 대화가 통하지 않고, 아이들 중심으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니 노인들은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화되었으니까.
사회에 어디에서도 노인을 반기는 곳은 없고, 노인을 위한 시설은 격리된 마을 경로당이나 복지관이 있을 뿐이다. 노인들이 격리된 공간이 아닌 사람들이 그립고, 살아 숨 쉬는 모습이라도 보려고 해도 갈 곳이 없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 마시기도 눈치가 보여 한쪽 구석에 앉아 그림자처럼 마시고 조용히 일어서야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어른 행사를 하는 노인들은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된다.
예이츠의 시에서처럼
‘그러니 이곳은 나와 같은 늙은이를 위한 세상이 아니라
저들의 세상이 아니겠어?’
라는 자조적인 한탄이나 할밖에.
그렇지만 세상은 늘 그렇게 일반적인 세태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 지라도, 노인을 위한 빵집은 있다. 구례에 가면 ‘목월’ 빵집이 있다. 빵집 사장 아버지는 직접 밀농사를 짓고 아들인 사장은 빵을 만든다고 한다. 목월 빵집에서는 65세 이상인 어떤 사람에게도, 날마다 빵을 사러가도 한 종류의 빵은 정가의 절반만 받는다고 한다. 이 집에서는 노인이 갑이고 일반 사람은 을인 셈이다.
빵도 시중에서 맛본 것과 차원이 다른 빵을 만날 수 있다. 사장 아버지가 농사지은 우리 밀을 사용하기도 하고,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한 사장의 노력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아담한 가게에서 하루 파는 양이 정해져 있어서 오후에 가면 빵을 구할 수가 없다(월요일은 쉼). 오전 10시에 문을 여니까 제대로 빵맛을 즐기고 싶다면, 한 번쯤 빵집 앞에서 문을 여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주인의 마음과 맛이 담긴 맛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은 시간 투자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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