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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진이를 찾아서
    산문 2015. 4. 7. 21:07

     

    황진이를 찾아서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인을 생각하면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정도가 떠오를 것 같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요조숙녀의 귀감으로 이상적인 어머니의 상이었다. 하지만 황진이는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서 숱한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제 맘에 드는 남자들을 마음껏 사랑하기도 하고, 허위로 가득 찬 남자들을 여지없이 요절냈던 여인이다. 시대를 앞서간 자유스런 여인으로 아직도 숱한 남자들의 뇌리 속에서 한 번쯤 그려보는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양반과 천민의 구분이 추상같았던 시대를 살면서 숱한 남성들을 취사선택하여 사랑을 나누었던 황진이는 요부였을까.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 고뇌의 삶을 살다간 여인이었을까.

    뛰어난 미모에다 지적 품위를 갖추었으며 예술적 자질이 탁월했던 그녀는 신분과 사회적 환경에 몸으로 저항하며 페미니즘을 실현한 선구자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라 안은 물론 중국에까지 소문이 났던 황진이고 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재원이면서 미와 요염함을 두루 갖춘 여인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이 시대를 사는 김영민은 그녀를 이렇게 그리워하고 있다.

     

    당찬 기품, 봉건 사회의 틈을 예리하게 비집고 드는 기지와 해학, 그리고 뭇 남성을 녹이는 요염한 자색을 지닌 이채로운 존재, 무명의 필부라고 쉽게 딸 수 있으되, 권문세가의 양반들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꽃이니, 꽃이야 허망하게 시든다지만, 어디에서 이 같은 꽃들을 찾아볼 수 있으랴. (文化 文禍 文和 177쪽 김영민)

     

    시대를 앞서간 황진이가 남긴 글들(시조 6수와 한시 7수를 남겼다고 한다)을 음미한다면 그녀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을 듯하다.

     

               咏初月(영초월)

     

    誰斷崑崙玉 裁成織女梳(수단곤륜옥 재성직여소)

    牽牛一去後 慾擲碧空虛(견우일거후 욕척벽공허)

     

    뉘라서 곤륜산 옥을 캐어다가

    직녀의 얼레빗을 만들었는고,

    한 번 떠난 견우 오지 않기에

    서러워 허공에 던진 것이라오.

     

    황진이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죽은 백인옥이라는 총각을 위해서 지은 시라고 한다. 백인옥이 상사병에 걸려 죽은 후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서 움직이지를 않자, 그녀가 속옷을 벗어 상여에 덮어 주자 상여가 움직였다고 한다. 기생의 딸이라고는 하지만 남녀의 유별이 엄격했던 시대에 처녀의 몸으로 자신의 속옷을 벗는다는 행위는 정조를 잃는 것과 다름이 없는 파격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생의 딸인 진현금의 미혼모 딸로 태어나서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황진이, 그녀가 기생이 될 무렵 백인옥의 죽음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자신을 짝사랑하다가 죽은 영혼을 달래주기 위하여 지은 시라고 하는데 그에 얽힌 사연을 알고 보면 시의 의미는 한결 애절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비록 얼굴도 모르는 총각이었지만 자신을 사랑하다가 죽은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이 잘 드러나 있다. 총각의 죽음이 어쩌면 삶에 대한 무상함을 던져 주었고 그로 인한 황진이의 삶은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남성 편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돈이나 권력을 우습게 알며 윤리적 위선이나 지적 엄숙함을 여지없이 깨뜨리고는 허무함을 느꼈던 황진이였다. 누구에게도 속박 당하지 않는 자유로움 속에는 그가 평생을 어느 한 곳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영혼의 방랑자로서의 고독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 돌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이 시는 이언방이라는 사람을 사모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시의 은유가 노골적인 성애라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허리를 돌혀 내어/에서 춥고 긴긴 밤을 새우며 님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기대가 있기에 한허리(깊고 은밀하며 중심이 되는 핵심의 허리)를 베어 내겠다고 한다. 한허리를 돌혀 낸다는 것은 사랑하는 님에 대한 사랑의 성취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을 향한 확고하고 뜨거운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춘풍 이불(사랑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 속에서 은밀하게 님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해두겠다고 한다. 언젠가 님이 오면 달아오른 몸(오신 날 밤)을 굽이굽이(온몸에 간직하고 준비해 둔 사랑을 갈구하는 온몸) 태우겠다고 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자는 오로지 남성의 도구로 취급되던 시대에 이처럼 간절한 사랑을 노래할 수 있었던 여인은 분명 선구자적 기질을 가졌던 여인이다. 조선 500년의 역사에서 여인들의 한과 욕망을 대변하는 남성 중심 사회를 깨뜨리는 거리낌 없는 선언이고 도전이라고 할 수밖에.

     

    개울 곁에 옛절이 쓸쓸도 한데, 교목은 시름을 더해 주누나.

    차가운 안개는 스님의 꿈 흔들고, 깨어진 탑머리에 세월만 흐르네.

    번화했던 그 옛날 그려 보나니, 봄도 가을처럼 쓸쓸함을 어찌하랴.

     

     

    이 시는 황진이가 면벽수도 30년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요절내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황진이에게 금기는 없었다. 어떤 남성이든 그녀의 관심을 끌고 한번 작업을 걸려는 기미가 보이면 그 남자는 식욕을 탐하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불성을 얻기 위하여 30년 면벽을 하는 선승조차 황진이의 몸에 대책 없이 쓰러지는 걸 보며, 음심을 품은 남자는 바람에 힘없이 쓰러지는 고목으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해서 어떤 남자라도 자기의 치마폭에 놀아나게 할 수 있다는 자만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30년의 수도가 황진이의 몸뚱이로 인하여 웃음거리가 되어 파계한 지족은 어쩌면 모든 남성의 실상인 것이다. 30년 면벽이 하룻밤 사이에 황진이의 뇌쇄적적인 살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도루아미타불이 된 그에게서 완성을 추구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고뇌 즉 아킬레스건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실체를 보게 된다. 송도 3절 중 하나라는 서경덕의 황진이에 대한 사랑의 거부(그 역시 첩을 둔 양반 남성에 지나지 않음)는 유교 중심 사회에서 지족과 대비시키려는 후세 사람들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지족에게서 서경덕보다 인간적인 연민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스물두 살의 황진이가 성불이 다 된 지족 선사를 요절내고 양심의 가책 아니면 견고하리라 믿었던 수도승에 대한 실망으로 지은 이 시에는 봄 속에서 가을을 느끼는 허무가 진하게 느껴진다. 황진이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족선사를 넘어뜨리며 느낀 남성들의 허약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통쾌함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녀도 누구를 조롱할 자격은 없었다. 단지 인간적인 고뇌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런 시를 남긴 황진이가 멋지달 수밖에…….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애어 가는고.

     

     

    이 시는 황진이가 중종의 사위 송인(宋寅)을 만나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황진이에게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싫은 것은 싫은 것이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거리낌 없이 유혹하여 사랑을 나누다가 헤어졌다. 황진이의 요염함과 지색(知色)을 겸비한 매력에 넘어가지 않을 자 그 누구이던가. 희고 뜨거운 황진이의 품에 안겨 열락에 젖었던 남자들은 모두가 떠나고 황진이의 가슴에는 켜켜이 허무만 남은 건 아닌지.

    이 시에는 청산(황진이)과 녹수(송인)가 다 같이 미련과 아픔이 남기는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흐르는 물이 청산을 휘감아 돌다가는 결국 산을 떠나는데 산은 물을 잊지 못하고, 푸른 물도 산을 잊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만나고 헤어짐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황진이의 남자에 대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결국 그녀는 한 남자에게 정을 주기보다는 지천으로 널린 남자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선택하여 사랑을 나누는 흘러가는 구름이었다.

    기생이면서 도도했고, 뜨거운 몸을 가졌으면서 때론 얼음처럼 차가웠고, 자유로우면서 정숙했고, 뭇 남자를 짓밟으면서 절제할 줄 알았고, 오만하면서 겸손을 잃지 않았던 황진이의 부활을 꿈꾼다.

    황진이를 그리워하는 숱한 남자들 중에서 멋스럽게 연민의 정을 나타낸 사람은 아마도 임제일 것이다. 벼슬을 받아 평안도로 가던 중 송도에 들러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읊은 시는 황진이에 대한 그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은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뭇쳤난다.

    () 잡아 권()할이 업스니 글을 슬허하노라.

     

     

    황진이는 뭇 남성을 희롱한 꽃이었으며, 스스로 남자를 선택하는 당찬 꽃으로 시대를 초월한 여인이었다. 남자를 우습게 알고 그들의 위선을 무너뜨리는 여전사이며, 성의 굴레를 뛰어넘은 자유주의자이며, 멋과 혜안을 가진 실팍한 최고의 연애꾼이었다. 완고한 시대와 사회를 마음껏 조롱하며 숱한 염문을 뿌렸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여인이다. 천민의 신분으로 양반과 엄숙한 도덕군자들의 허세와 위선을 무너뜨리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은 채 자유로운 삶을 살다간 기생 이상의 이미지를 남긴 희대의 여인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녀가 남긴 시조와 한시들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남자들이 남긴 시와 다르게 인간의 진솔한 감정에 충실하고 있다. 사랑과 애욕을 노래한 것들이라서 지금 읽어도 친밀감을 주고, 세월을 뛰어넘는 정감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의 미모가 권력이 되고 돈이 되는 세상에 황진이는 지금 어디에서 부활를 꿈꾸고 있는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가 지는 벚꽃처럼 화려하게 스러져간 황진이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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