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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에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며
    산문 2015. 3. 10. 14:17

     

    무기력한 부모의 참회

     

      2014416일 아침, 인천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휴대전화에서 제목만 보았다. 걱정과 불안이 스쳐갔지만 수업이 있어서 클릭할 시간이 없었다. 수업을 끝내고 쉬는 시간에 휴대전화에 뜬 한 줄 뉴스에 고등학생들이 모두 구출되었다는 문자를 보고 안심을 했다. ‘그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학생들을 구출하지 못하겠어.’ 이렇게 스스로 결론을 지었다.

      그 후 두 달하고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하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승무원과 정부가 보여준 무책임하고 무능했던 사실들이 하나씩 들어날 때마다 처음에는 슬픔을, 다음에는 분노를 그리고 지금은 절망에 빠져있다. 그간 일어난 수많은 참사들이 국민들의 가슴에 켜켜이 새겨져 있고, 아린 상처가 딱지진 채 남아있는데 또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 사고가 안 나면 가장 좋겠지만 우리나라는 사고공화국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대형사고가 일어난다. 그런 대형사고가 났을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평소 원칙과 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은 인재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사고 속에 숨겨졌던 진실들을 파헤치면 관료나 정치인들의 위법 행위가 어김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대가성이 없는 관행이라는 말로 처벌을 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서민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듣기 거북한 말이 관행이라는 단어다. 힘이 있는 사람들이 아무런 가책 없이 저지르는 대가성이 없다는 범죄는 관행으로 굳었고, 서민들에게는 추상 같았던 법이 그들 앞에서는 느슨해져버린다. 그들이 늘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를 받아야 할 서민들은 느슨해진 원칙과 법으로 인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게 되는 게 지금까지 일어난 사고의 전형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난 후 이 땅의 부모들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고, 정부는 온갖 대책을 발표하고, 국회는 국정조사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형사고가 나면 늘 그랬듯이 법석을 떨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예를 수없이 겪어왔다. 서해 훼리호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화성 씨랜드 사고, 경주 리조트 붕괴 등 반복되는 참사 때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관련자를 엄벌에 처하고, 법을 정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고쳐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국민들은 이번 사고처리 과정을 보며 책임감 없는 세월호 승무원들에게 분노했고, 무능하고 안일한 해경이나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와 대통령을 보며 참담한 심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이런 수준밖에 안 되는 나라였나.”

    앞으로 어떻게 안심하고 자식들을 수학여행을 보낼 수 있을까.”

    이런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게 정말 수치스럽고 화가 난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이번 참사에서 받은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염려가 되는 건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다. 수많은 사고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정책이나 대책을 세워 사고를 방지하고,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은 전철을 다시 밟을 것이라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사고가 났을 때 법석을 떨고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잊어버리는 것도 우리의 관행으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권력이나 힘을 가진 사람들의 부정이 드러날 때 어김없이 관행이라는 말로 범법 행위를 변명하는 걸 보았다. 수억 원을 받아도 대가성이 없는 관행이었다고 하고, 고위 관료들이 재직할 때 업무 관련이 있는 기업에 퇴직한 후 곧바로 높은 자리에 앉는 것도 관행이고,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떨어져도 대통령의 배려로 공공기관의 장이나 노른자위에 한자리 꿰차고 앉는 것도 관행이고, 고위 검사나 판사를 지낸 법조인들이 변호사를 개업한 후 전관예우라는 악습으로 재판에서 승소하는 것도 관행이고, 교수가 제자들의 논문을 가로채거나 표절해도 관행이라고 하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이런 사람들이 장관이나 고위직에 임명되는 일도 이제는 관행으로 굳어버렸다. 이런 힘을 가진 사람들의 관행은 상식과 법을 조롱하며 바로서야 할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선무당이 사람을 잡듯 전문성 없는 경영으로 그 조직을 무력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관행은 그 조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고, 그 조직을 경쟁력 없는 조직으로 만들어버리며, 조직원들은 누구도 소신 있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전문성도 없는 권력의 실세 앞에서 창의성을 발휘해서 일을 하려는 사람보다는 적당히 눈치나 보며 보신을 위한 행동을 하는 조직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들은 이런 관행으로 인해서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 있다는 걸 국민들은 다 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런 관행으로 인해서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힘없는 국민들에게 좌절과 절망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이런 일들을 겪으며 기대와 관심이 냉소적이고 무관심한 태도로 바뀌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근원인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 일들이 관행으로 굳어졌고,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 관행이 이번 세월호 참사에도 어김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검찰의 수사결과를 보지 않아도 국민들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그걸 다시 확인하는 일만 남았기에 우리는 슬프고 절망하게 된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학생들이 남긴 문자는 우리나라 모든 부모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아픔이다.

    엄마 내가 말 못 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아빠, 배가 가라앉으려고 해, 어쩌지.’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배가 가라앉고 있어요. 아빠,살아서 만나요.’

      부모들의 가슴을 찢어놓는 아이들의 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제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터인데.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이 나라의 모든 부모들이 정말 두 번 다시는 이런 참극을 겪지 않아야 될 텐데. ‘사랑한다는 그 말을 남기고 자식들이 차갑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걸 무력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던 이 나라의 모든 부모들은 죽는 날까지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

      ‘사랑한다는 이 말을 아픈 각인으로 새기고 생활해야 하는 이 나라의 부모들은 도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까. 과연 나는 이번 세월호 참극에 승무원과 정부만을 탓할 수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이번 참극에 나도 일조를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토록 오만하게 온갖 부조리한 관행을 저지르고 있을 때 나는 무얼 했을까.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라는 생각으로 미리 포기하고 생활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바로 그런 무관심이 이번 참극을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선택하고 견제할 수 있는,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 살아왔다. 그들이 관행이라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만든 건 분명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고 앞으로도 그리 할 것이다. 그들의 오만한 행동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도 다시 뽑아주는 국민들의 투표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 안에 그 관행의 근원이 있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로 갈라져서 선거할 때마다 똑같은 당의 인물이 당선되는 결과가 나오고, 그런 관행을 보며 냉소했다. 때문에 나는 투표장으로 가지 않았다. 어쩌다 가더라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생각 없이 한 표를 행사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아.

      나는 내 권리를 포기하며 그들이 제멋대로 설칠 수 있도록 방관해 온 죄인이었다. 선거에 대한 무관심한 그리고 생각 없이 투표한 나의 관행은 관피아와 정피아들의 잘못에 못지않구나. 내가 좀 더 성찰하고 투표했더라면 오늘같이 가슴 아픈 현실을 만나지 않았을 터인데. 가슴이 찢기는 오열을 하고 있지 않았을 텐데. 내가 관행적으로 해 온 투표에서 벗어나 고민하고 성찰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한 표를 행사하려 한다. 정말 가만히 있지 않겠다. 너희들이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믿었다가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맞았기에 이제 죄 많은 이 부모가 나서려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런 비통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깨우친 투표의 관행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너희들을 보내고 이제야 반성하고 참회한다. 이 땅에서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무관심하고 무기력했던 부모였음을 참회한다. 하지만 너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라는 말도 차마 할 수 없구나. 무슨 염치로 살아있는 내가 먼저 간 너희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사랑한다는 그 말을 온전히 간직하는 것조차 부끄럽구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염치가 없다. 어둡고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으며 너희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어머니, 아버지를 불렀다. 하지만 절박했던 그때 부모들은 너희들의 부름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았는데 무슨 염치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부모들이 죽고 너희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리 했을 것이다. 무슨 말로도 너희들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기에 가슴이 아플 뿐이다. 다만 결연한 마음으로 다짐한다. 현명하게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투표하는 관행을 만들어가겠다. 이 나라에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진심으로 국민을 존중하는 정의로운 사람을 뽑으려한다. 상식이 통하고, 법이 공정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을 뽑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려 한다. 더디고 느리더라도 그 길만이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이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겠구나. 그리하여 관행이 아닌 정의가 바로 서는 날 너희들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을 말을 떳떳이 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상적이고 사소하지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실수와 오류가 몇 개 이상 중첩된 경우 대형사고가 발생한다.’는 사회학자 찰스 페로의 말을 생각하며 눈물과 함께 너희들을 가슴에 묻는다.

     

    이 글은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한겨레신문에서 세월호 참사 계기 한겨레한국 사회의 길을 묻다에세이 공모전에 선택되어0416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책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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