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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산을 오를 뿐그곳에 가면 2015. 4. 13. 22:54
사람은 산을 오를 뿐
해는 날마다 떠오른다.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산에서 막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의 장엄함에 감동하고 환호하게 된다. 특히 겨울에 떠오르는 태양은.
새벽 산의 공기가 서늘하다. 사월이 되자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한층 더 많아졌다. 봄이 오기도 전 산에서 자신의 존재를 맨 처음 알리는 새는 호랑지빠귀다. 호랑지빠귀는 2월 어느 날 채 추위가 가기 전부터 빈 숲속을 그로테스크하게 흔들어 놓는다. 몇 년 전 어둠 속에서 처음 그 소리를 듣고 날카롭고 괴기스러움에 놀랐다. 예리한 칼날로 꽁꽁 언 하늘을 그으면 그런 소리가 날까. 아니면 분노나 원한에 가득한 사무라이의 검이 스쳐지나가면 그런 소리가 날까. 호랑지빠귀는 휘파람새나 다른 새들과 달리 단음으로 소리를 낸다.
다른 새들이 지저귀지 않을 때 호랑지빠귀 홀로 그렇게 소리를 내니까 그 소리가 더욱 외롭고 괴기스럽게 들린다. 그러다가 차츰 날씨가 따뜻해지면 하나둘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늘어난다.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파며 내는 소리는 난타 공연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리듬으로 숲을 흔든다.
숲에서 처음으로 새싹을 밀어내는 나무는 오리나무다. 오리나무 꽃이 조금씩 연두색으로 변하며 봄의 전령으로 숲에 봄을 알린다. 뒤이어 다른 나무들도 좁쌀만 한 새싹들이 돋기 시작하고 진달래가 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풀들도 작고 여린 꽃들을 앙증맞게 달고 숲을 아름다움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산 벚꽃, 조팝꽃, 제비꽃, 양지꽃 등이 어깨동무를 하고 피기 시작하면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새벽 산을 가득 채운다.
청솔모도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듯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로 날쌔게 돌아다니고, 다람쥐도 귀엽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사람을 쳐다보고, 고라니와 노루도 한두 마리 혹은 떼를 지어 산을 누비고 다닌다. 산에 사는 짐승들은 사람이 산에 가지 않을 때도 산을 지키는 주인이다.
새 소리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도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도란도란 들려온다. 비가 내리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바람이 소나무나 활엽수 잎과 가지를 스치며 내는 소리,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 나뭇잎들이 나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들풀들이 눈웃음을 지으며 웃는 소리도 들린다.
날마다 변해가는 숲의 모습과 색채 그리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산에 갈 때 라디오나 스마트 폰을 꺼보면 어떨까. 귀를 열고 눈을 열면 누구에게도 다 보이고 들리지 않을까. 산에서 악을 쓰면 나무도, 새들도 그리고 나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산을 오르는 건 사람이다. 산은 사람을 오를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산을 안을 수 없지만 산은 사람을 감싸 안고 위로와 즐거움을 준다. 산에 갈 때 삼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가면 산은 사람에게 훨씬 많은 걸 보여주고 들려준다. 아름다운 것들을.
그렇지만 산은 늘 침묵으로 인간을 맞아준다. 인간의 마음이 괴롭든 슬프든 즐겁든 말없이 넓은 품으로 안아준다. 그 넓은 마음으로.
신이 그러하듯이.
봉화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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