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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굽어진 모습이 더 아름답다
새싹들이 작고 여린 앙증스런 모습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좁쌀만 한 얼굴을 내밀고 초록 미소를 짓는다. 아직은 찬바람이 머물며 심술을 부리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언 땅에서 나뭇가지마다에서 새싹과 꽃들이 사람을 반기고 있다. 추위 속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봄은 생명의 경외로움과 환희를 가져다준다.
남녘에 매화가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다. 맨 처음 봄을 알리는 꽃이다. 처음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게 많다. 첫사랑, 첫 만남, 첫 출근, 첫눈, 첫물 등. 더구나 지루하고 추운 겨울을 견디고 처음 피는 꽃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데 그 중에서도 매화가 으뜸이 아닐까.
매화나무는 수없이 많이 있지만 순천에 오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매화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순천복음교회 정문을 들어서면 먼저 분재처럼 가꾸어진 소나무와 수석이 반겨준다. 거기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연륜이 지긋한 중년부터 노년까지 멋진 모습으로 나이를 먹은 매화나무들이 정갈하고 잘 정비된 정원에 서 있다. 백매화, 홍매화, 흑매화, 황실매화, 겹비매화, 홑비매화, 홑연분홍매화 등을 볼 수 있다.
같은 매화라도 세월의 묵직한 사연들을 켜켜이 간직한 채 수묵색으로 나이 먹은 매화나무 가지에서 피는 꽃은 세월의 연륜을 담고 있어 더욱 아름답다. 줄기 여기저기에 툭툭 불거진 세월의 증표를 담고 고혹적인 모습으로 서서 화사한 꽃을 피워 올리는 매화나무는 옛 선비들이 모습 같아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훈훈해 진다.
키가 큰 나무는 오른쪽에, 키가 작고 멋지게 굽어진 나무는 연못 주변에 조화롭게 서 있다. 교회 앞까지 괴석과 매화나무 그리고 연못과 연못 사이를 흐르는 물길 따라 꽃과 나무가 정성스럽게 관리되고 있다. 나무 한 그루 괴석 한 점 정원의 질서에 벗어나지 않고 마음껏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교회 건물이 보이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하느님에게 이르는 길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천천히 정원을 걷다보면 세월의 흔적들을 담은 매화나무가 연못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몸을 기웃하며 굽어진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과 돌 그리고 굽어진 매화나무의 조화, 특히 굽어진 매화나무가 화사한 꽃을 달고 서 있는 모습이 연못 주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꼿꼿하지 않지만 개성을 한껏 뽐내며 조화롭게 연못에 비친 모습이 굽어짐의 미학이라고 할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다
“때론 굽어진 모습이 바로 선 모습보다 더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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