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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외로움을 탄다그곳에 가면 2015. 4. 20. 23:11
꽃도 외로움을 탄다
지난겨울은 혹독한 추위가 없이 따뜻한 겨울이었다. 꽃샘추위가 있기는 했지만 잠시였고 겨울의 끝자락에서 온화한 봄으로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꽃들도 추위를 타지 않고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화사한 모습으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
진달래가 만지면 바스러질 듯한 여린 꽃잎으로 산을 물들이고, 산벚꽃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꽃잎들로 축제를 여는가 싶더니 꽃보라를 날리며 진다. 외진 산길을 따라 걸으며 문득 각시붓꽃이 생각나 그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나무와 활엽수 밑으로 가서 몇 년 동안 각시붓꽃이 피었던 곳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다가 겨우 한 포기를 찾았다. 근처를 자세히 돌아보았지만 더는 보이지 않았다.
(첫째 날)
반가움에 각시붓꽃 옆에 앉았다. 세 개의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천천히 살펴보고 있는데 꽃이 말을 걸었다.
“아저씨, 안녕? 왜 이제야 왔어?”
“날 기다렸어? 내가 너를 잠시 잊고 있었단다. 미안해.”
“지금 이렇게 와주어서 기뻐. 혹시 안 오면 어쩌나 걱정 했어.”
“그랬구나. 네가 예쁘게 필 때까지 매일 올 거야. 그런데 주변에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둘째 날)
각시붓꽃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꽃도 생이 있는데 지난겨울 지나고 깨어나지 못했어. 내가 애타게 친구들을 불렀는데 소식이 없었어. 너무 무섭고 외로워서 아저씨를 더 간절히 기다렸어.”
“꽃들의 생이라고?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내 감정이 무디고 둔했구나.”
“아냐. 사람들끼리도 남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조롱하고 놀리잖아. 더군다나 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의 눈에도 잘 띄지 않은 아주 하찮은 들꽃인걸.”
“꼭 그런 것은 아니야. 네가 각시처럼 수줍고 예쁘니까 각시붓꽃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잖아.”
“아저씨. 나 부탁이 있는데 각시붓꽃이라고 부르지 말고 다른 이름으로 불러줘. 그 이름 때문에 더 외로워.”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구나. 어렵지 않은 일이지. 그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으뜸인 제우스 아내의 이름인 헤라라고 불러줄게.”
“와! 그렇게 화려한 이름으로. 고마워.”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내일 올 테니까 예쁘게 꽃을 만들고 있어.”
“밤에도 자지 않고 치열하게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내일 새벽에 만나. 이제 외롭지 않아.”
(셋째 날)
봉화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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