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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의 할머니는 퍼플교를 꿈꾸었다그곳에 가면 2019. 10. 10. 13:19
박지도의 할머니는 퍼플교를 꿈꾸었다
신안군 안좌면 박지도에 한 할머니는 출렁이는 파도에 둘러싸여 뭍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신세를 한탄했다. 꿈을 꾸면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 박지도에서 물과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고 보따리 한 개를 들고 배가 아닌 두 발로 다리를 건너 뭍에 이르렀다. 눈을 뜨면 꿈이었다. 할머니(김매금)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지거나, 태풍이 오거나, 밤이 되면 그나마 오가는 뱃길마저 끊긴 섬에 갇힌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그럴 때면 동네 사람들에게 말했다.
“두 발로 다리를 건너 신나게 걸어 뭍에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할머니의 소망은 섬사람들의 바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끝내 두 발로 걸어서 뭍을 나가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했지만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서 드디어 다리가 놓였다.
2008년 할머니와 섬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다리가 준공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보라색 꽃과 농작물이 풍성하고 일 년 내내 꽃이 피어 다리 이름을 ‘퍼플교’로 지었다고 한다.
퍼플교에 가까워지면 마을 집의 지붕들이 퍼플로 단장되어 있다. 꿈꾸는 지붕처럼 보인다. 갈맷빛 주변 나무들 속에 고요히 들어앉은 집들은 무척이나 이국적인 풍경이다. 방앗간도, 카페도, 공중전화도, 화장실 지붕도 퍼플이다.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일상에서 퍼플인 건물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보라색을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건 본래의 귀족적이면서도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거리감이 있는 심리를 유발하는 색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칫 조금은 일상에서 어울림을 거부하며 홀로 튀는 색이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퍼플교에 가까이 이르면 마을이 시선을 사로잡는 퍼플 집들을 만나게 된다.
구지에서 박지도까지 547미터, 박지도에서 반월도까지 915미터를 다리를 나무로 만들었다. 지금은(2019.10.9) 박지도에 반월도로 가는 다리는 공사 중이었다. 11월이 지나야 갈 수 있다고 한다. 다리는 아직 완전한 퍼플이 아니었는데 앞으로 모두 보라색으로 칠한다고 한다.
일상의 틀에서 잠시 벗어나 색다른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천사대교를 건넌 후 퍼플의 꿈을 꾸며 달리면 1463미터의 퍼플교를 만나게 된다. 퍼플교를 천천히 걸어보는 체험도 꽤 괜찮을 듯하다. 그렇지만 퍼플교에 가는 길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순천에서도 3시간이 걸렸다.
보라색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서구의 몰락」의 저자 슈펭글러(Spengler Ostwald)는
‘보라는 빨강이 파랑에게 압도당한 색으로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하는 여인 같고 또한 성직자와도 같다. 보라의 상징적 효과는 고독, 우아함, 화려함, 추함의 다양한 느낌, 예술적인 영감을 준다. 특히 붉은색이 많이 있는 보라는 화려한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라고 말했다.
화가인 클로드 모네는
‘나는 마침내 대기의 진정한 색을 발견했다, 그것은 보라색이다. 신성한 공기는 보라색이다. 앞으로 3년 뒤에는 모두가 보라색으로 작업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인간의 죄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죄는 섹스일 것이다. 빨강이 섹시한 빛을 말하려면 반드시 보라가 필요하다. 빨강, 보라, 검정, 분홍은 순서에 상관없이 부도덕, 유혹, 섹스의 색조다. 섹스는 빨강 색보다 보라에 더 많이 들어 있다. 이것이 보라의 비밀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금지된 섹스를 ‘회색시대의 보라빛 시간’이라고 불렀으며, 천재적인 작가이자 동성애자이다. ‘퍼플의 정열’은 유명한 미국 칵테일로써 알코올 함량이 높아 섹스에 대한 망설임을 없애 준다. (바른 생각 바른 글. 보라색 연구)
보는 관점에 따라 일반적인 색체가 아닌 전위적이고 하고, 여성적인 색이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암울한 섹스 지향적이기도 한 퍼플로 다리를 만들고, 마을 건물과 거리를 퍼플로 단장하고 있는 곳이 진보적이고 서구 지향적인 어느 도시가 아닌 시골, 그것도 외진 섬마을에 있다고 하는 사실이 이채롭다. 전남 신안군 박지와 반월도 거기에 우리나라에서 퍼플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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