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보길도 윤선도의 자취를 찾아서
    그곳에 가면 2019. 8. 5. 13:59

     

     

    보길도 윤선도의 자취를 찾아서

     

               보길도를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다. 완도의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고 노화도의 동천항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보길도로 가야한다. 완도나 해남에서 보길도로 직접 가는 방법은 없다. 먼저 배를 타고 노화도로 가서 차를 타고 보길도로 가야 한다. 완도에서 가는 경우에는 노화도 동천항에서 하선해야 한다. 성수기 주말에는 보길도를 찾는 사람이 많아 차를 싣고 갈 수 없어 늦게 가면 한 시간을 더 기다릴 수도 있으니 막배를 탈 때는 서둘어야 한다.

     

     

     

     

    (완도 화흥포항) 

     

       보길도 윤선도가 머물렀던 원림은 넓다. ‘세연정 지역은 3천여 평의 계원으로 부용동 입구에 있다. 세연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연못 (205여 평)과 계담(600여 평)과 판석재방과 동대, 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와 동백나무, 대나무,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서 아름답다.’

     

       윤선도(尹善道, 1587~ 1671))는 조선시대 중기, 후기의 시인·문신·작가·정치인이자 음악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우가’ ‘어부사시가등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써서 친근감을 주는 선비라고 할 수 있다.

       

       보길도 부용동은 윤선도가 병자호란 후에 청 태종에게 인조가 항복하고 굴욕을 당한 것에 실망하여 가족을 데리고 제주도로 향했다. 가던 중 태풍을 만나 잠시 머물렀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서 제주도로 가지 않고 보길도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세연정으로 가는 길)

     

     

     

       윤선도 유적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용동 주변 지역이 넓은 것과 거기에 세연정이라는 넓은 정원(세연정 지역은 3천여 평의 계원으로 부용동 입구에 있다. 세연정을 중심으로 조우에 연못 (205여 평)과 계담(600여 평)과 판석재방과 동대, 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와 동백나무, 대나무, 소나무 숲)을 조성한 재력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국난을 피해 제주도로 가던 중에 어떻게 그렇게 넓은 지역에 아름다운 세연정을 조성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윤선도 집안의 부를 알려면 해남의 삼산벌에서 그 유래를 찾아야 한다. ‘임란 이전에 삼산벌의 주인은 해남 정씨였다. 그러나 선대의 예에 따라 자손균등 상속으로 이 땅은 해남 윤씨에게 시집간 딸에게 떼어주게 되었다. 처갓집 덕분에 큰 부자가 된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은 일찍이 장자상속을 시행하고 이것을 윤씨 집안 만대의 유언으로 남기어 해남 윤씨의 자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 이리하여 신흥갑부가 된 해남 윤씨 집안에는 이 재력을 바탕으로 하여 인물을 배출하기 시작하니 어초은의 4대손에 이르러 고산 윤선도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오고 그의 증손자대에는 공재 윤두서가 배출되었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65유홍준

     

     

     

     

     

     

     

     

     

     

     

     

     

     

       세연정를 거닐며 생각에 잠긴다. 병자호란의 굴욕을 피해 제주도로 가다가 보길도에 마련한 원당이라는 넓은 터에 건물을 짓고 연못을 만들어 놓고 유유자적 하며 어부사시사같은 시를 지으며 살았던 윤선도는 정치와 창작 어느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았을까? 우리 국문학사를 찬란하게 장식한 송강 정철 그리고 윤선도, 그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정치였고, 창작은 낙향을 했을 때의 하나의 소일거리가 아니었을까?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유희를 했다는 동대와 서대 옆에 선비들의 연못에 늘 있는 백일홍)


      과연 그들에게 백성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필요할 때 불러다 일을 시킬 수 있는 그저 아랫것들에 지나지 않았을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어부어사시' 같은 친근한 시를 지은 윤선도는 백성들을 늘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준 정치인이고 창작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권력지향적이었고 백성의 아픔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끊임없는 해적질, 임진왜란, 식민지 침탈 등 우리 민족에게 과거를 수난의 역사로 만들 일본이 다시 우리를 짓밟으려는 준동(蠢動)을 시작했다.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를 괴롭힐 왜놈들이 치밀한 계획으로 경제 전쟁을 시작했는데 과연 여의도 높은 곳에서 고액의 세비를 받으며 유유자적 하는 나리들에게 민초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내년 총선에서 당선을 위한 하나의 숫자에 지나지 않은 건 아닐까?

     

     

     

     

     

     

     

         세연정을 나서 왼쪽 길을 따라 조금 가니 바다가 보인다.

     

     

     

     

      망끝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며 비루한 일상을 씻어낼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만 쪽빛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아쉬움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공룡알 해변의 반짝이는 돌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