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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 백련 앞에서
여름이 뜨겁다. 무안 회산 백련지를 찾아 일찍 집을 나섰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8월의 태양이 열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10만평 연꽃방죽에 초록 연잎들이 운집한 군중들처럼 직립을 한 채, 하얀 촛불 하나씩 들고 섰다. 하얀 촛불이 밤을 다 태워 거뭇거뭇 흔적을 남긴 촛농들이 연밥을 만들었다. 십리 길 방죽을 돌며 하얀 연꽃을 부른다.
이미 한 시절이 지난 듯 드문드문 하얀 보석으로 숨었다. 흔하디 흔하게 피었다면 눈부심이 아니었겠지. 초록 방패를 들고 선 믿음직한 사내들 호위 받으며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구나. 수많은 사내들 중에서 누가 알랴? 백련이 하얗게 들어 올린 염화시중미소(拈華示衆微笑)를!
백련(白蓮)
나상기
영산강(榮山江)을 돌아 넘어 오르는
아침햇살에
새벽이슬 머금고 피는 연꽃
개구리 왕눈이 뛰어 놀던
연잎에 누운 이슬방울
순백의 하얀 연꽃이 피어있다
동양 최대의 드넓은 백련 자생지
천상의 아름다운 연방죽에
곱디 고운 무안 백련
연분홍빛 시간을 담아
순백(純白)의 하얀 연꽃 피우는
무안 일로 회산백련지
푸른하늘 하얀구름 안고
피어있는 청순한 백련이
수줍은 처녀의 옛된 얼굴에
여인의 온화한 마음을 담아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를 보낸다
연꽃이었다
신석정
그 사람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이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 하나 있다
눈빛 맑아,
호수처럼 푸르고 고요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침나절 연잎 위,
이슬방울 굵게 맺혔다가
물 위로 굴러 떨어지듯, 나는
때때로 자맥질하거나
수시로 부서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의 궤도는, 억겁을 돌아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수없이. 수도 없이
그저 그런, 내가
그 깊고도 깊은 물 속을
얼만큼 더 바라볼 수 있을런지
그 생각만으로도 아리다
그 하나만으로도 아프다
연꽃이 되어
회색갈피
연꽃을 보러 왔나요?
하얀 꽃 단아해서
붉은 꽃 뜨거워서
당황했나요?
부끄러웠나요?
숨겨두었던 마음
연꽃에게 고백하면
당신도 연꽃이 될 수 있지요.
연꽃을 보러 왔나요?
하얀 꽃 단아해서
붉은 꽃 뜨거워서
허접했나요?
울고 싶었나요?
삶이 버거워 무거운 어깨
번민으로 흔들리는 마음
연꽃 안고 한바탕 울고 나면
당신도 연꽃이 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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