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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벌새'는 어디로 날고 싶을까
    영화. 드리마 2019. 12. 3. 14:08

     

     

    작은 벌새와 아픔을 겪는 은희

     

                   1994년은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도 가장 더웠던 한 해였다. 그해 북한 김일성이 죽었고, 성수대교 붕괴라는 믿을 수 없는 참사가 있었다. 그해를 배경으로 중학교 2학년 은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벌새는 새 중에서 가장 작아서 몸이 5cm이고, 몸무게는 2.8g밖에 되지 않는 새도 있다고 한다. 벌처럼 붕붕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서 벌새라고 한다 하고, 모습이 아름다워 나는 보석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열네 살 은희가 살아가는 애처로운 모습이 벌새를 닮았다. 벌새가 작은 날갯짓을 할 때 떨어져나간 깃털들처럼 아프지만 아픔을 어떻게 해 볼 없는 무기력한 열네 살 은희. 그럼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가 아픔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위태로운 사춘기를 극복해 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열네 살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1981년 태어난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이다. 1982년 김지영과 같은 또래이니까 당시 여자들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차별을 가정과 사회에서 받았다. 14살 은희의 가정도 가부장적 아버지가 있고, 오빠가 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있다. 은희의 부모는 방앗간 겸 떡집을 하고 있다. 방앗간 일은 거의 은희 어머니의 몫이다. 아버지는 적당히 바람도 피우며 가부장으로서의 지위를 누린다. 그때 거의 모든 가장이 그렇듯이 은희 아버지는 오로지 대를 이를 아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두 딸에게는 관심도 없고 나누어줄 사랑도 없다.

     

     

     

     

       아버지의 절대적 사랑과 관심을 받은 은희의 오빠는 걸핏하면 은희에게 폭력을 가하며 부모를 실망시키지 말라고 한다. 은희는 늘 사랑에 결핍되어 있다. 하굣길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를 반복해서 불러도 어머니는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부모는 은희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일상에 지쳐 딸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여유가 없다. 학교 보내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기에도 버겁다. 반면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지위를 누리며 가부장에게 주어진 특권을 누린다.

     

     

     

     

       열네 살 은희의 일상은 90년대 보통 가정의 한 사춘기 소녀가 겪는 일상을 섬세하고 디테일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서민 아파트에서 사는 빈곤은 면한 환경에서 당시 사회가 그렇듯이 두 딸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심 밖의 존재다. 날나리인 언니, 그 언니를 수치로 여기는 아버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아버지가 두 딸에게 가질 수 있는 관심의 한계가.

     

       은희가 겪는 세상은 만만치가 않다. 부모의 무관심, 오빠의 폭력, 남자 친구와 몰래 찾아와 이탈을 보여주는 언니, 의사 집 아들인 남자 친구가 있지만 남자 친구를 강제로 끌고 가며 던지는 냉소.

       “저 애가 방앗간 집 딸이니?”

     

     

                                                                                        (감독이 은희에게 쓴 편지)

     

       은희 주변의 모든 것들은 부스러기처럼 떨어져나간다. 부모, 남자 친구, 절친인 지숙, 일방적으로 관심을 쏟던 후배 유리 그리고 은희를 가장 애틋하게 대하는 하지만 지나치지 않은 사랑으로 감싸주고 이끌어주던 한문 학원 선생님까지. 은희는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이 그냥 속절없이 당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성장해 간다. 그런 그가 어른이 되면 82년 생 김지영이 될까 아니면 당차고 당당한 김영지 같은 선생님처럼 되어있을까?

     

     

       늘 결핍에 외로워하는 은희의 일상 중에서 때론 아슬아슬 긴장감을 주는 장면들도 책갈피처럼 들어있다. 은희가 갑자기 남자 친구를 데리고 아파트 계단으로 끌고 가서 키스를 해보자고 한다. 키스 비스므레한 것을 한 후 이번에는 혀도 넣어보자고 한다. 혀를 넣어본 후 바닥에 침을 뱉는다. 남자 친구도 따라한다. 그 장면을 보며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무를 뽑아 맛을 본 후 소녀가 맵다면 던지자 소년도 따라 더 멀리 던지는 장면이 겹쳐져서 웃음이 나왔다. 호기심이 더는 아찔한 관계로 가지 않도록 감독이 마련한 안전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자신의 풋풋했던 사춘기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어른들에게 선사하지 않았을까? 거기서 멈추었기에 아름다운 추억 남을 수 있었지만 거기서 벗어났다면 그 경험은 덕지덕지 때가 묻은 역사로 남지 않았을까? 은희 언니가 남자 친구와 방으로 몰래 숨어들어 나누는 은밀한 행위도 선을 그었고, 은희가 남자 친구와 나란히 방에 누워 마주보는 장면도 그렇게 아슬아슬한 선을 비껴하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이해가 안 되는 일도 벌어진다. 방앗간에서 만든 물건 좋지 않다고 말한 여자에게 식사 중에 쌍욕을 해대는 아버지, 피터지게 싸운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팔에 붕대를 붙인 아버지와 그 곁에 평온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어머니를 마땅찮고 불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은희.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부모를 닮아있는 걸 느꼈을 때의 씁쓸함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이다.

     

       은희가 언니와 붕괴된 성수대교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보여주었던 김영지 한문 선생을 생각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부실했던 시대, 가부장적 가정에서 남성이 아니어서 당한 차별, 은희 곁을 왔다 간 것들에 대한 상실의 쓴 맛을 견디게 한 힘을 주었던 맨토였던 김영지 선생, 은희에게 김영지라는 인물은 어쩌면 은희가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닮고 싶은 롤 모델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은희 역을 한 박지후, 한문 선생 역을 한 김새벽, 두 배의 연기가 억지스럽지 않고 과장되지 않는 절제된 모습들에 시선과 마음이 몰입되어 본 훌륭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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