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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동인가 혐오인가 「지옥의 묵시록」
    영화. 드리마 2020. 1. 7. 14:57

     

     

     

    감동인가 혐오인가 지옥의 묵시록

     

          묵시록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내 보임.’

       ‘하나님이 계시를 내려 그의 뜻이나 진리를 알게 해 주는 일.’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성경 요한 계시록의 의미인지( 요한의 묵시록의 메시지는 그리스도가 미리 경고한 박해를 당하게 될 미래 세대의 그리스도교도들과도 관계가 있다. 하느님이 사탄에게 거둘 승리(로마 제국의 박해에서 그리스도교도들을 구원하는 것)는 장차 올 시대의 악에 대한 승리와 하느님이 종말에 최종적으로 거둘 승리를 상징한다.) 아니면 베트남 전쟁에서 인간들이 보여주는 광기가 지옥을 암시하는  영화인지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내 관점에서는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들이 벌이는 전쟁이 평화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광기, 위선, 위악이 혼재된 수컷들의 지랄이었다. 전쟁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인간의 상처, 죽음, 살인에 대한 태도, 삶과 죽음 사이에서 슬픔과 환호를 하는 인간의 단면을 보며 영화를 볼 때는 물론 영화가 끝난 뒤에도 불편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해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윌라드 대위(마틴 쉰)은 귀국했다가 정신적 방황으로 아내와 이혼하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와 만신창이가 된 채 생활하던 중 사령부로 호출된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부대를 이탈하여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생활하는 커츠 대령(마론 브란드)을 암살하는 일이다.

     

     

     

     

      윌라드 대위가 커츠 대령을 만나러 가는 처음 만난 장면은 킬고어 중령의 유희를 하듯 벌이는 전쟁이다 

    헬기를 타고 폭탄을 퍼붓는 미군들은 껍을 질강질겅 씹으며  음담패설을 하며 유희를 즐기듯 양민을 학살한다. 이때 나오는 음악이

    바그너의 '리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이라고 한다. 바그너의 음악을 히틀러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용하던 음악이다. 이 음악으로 사람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하니 인간이 이성을 상실할 때 어떤 광기를

    저지르는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생, 독재는 인간 극한의 광기로 몰고가는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서핑에 미친 그는 파도가 서핑하기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바닷가 베트남 마을에 네이팜을 쏟아 부으라고 명령하여 불지옥으로 만들며 인간적 갈등이나 고뇌 같은 건 눈곱만큼 보이지 않는다.

    폭탄과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부하에게 서핑을 하라고 명령하는 그 모습은 지옥에 사는 악마에 다름이 아니다.

     

     

     

           두 번째 만나게 되는 장면은 위문 공연을 하는 두 여자들의 모습에 광란한 수컷들이 헌병들의 제지를 뚫고 무대로 몰려들자 헬기를 타고 사라지는 두 여자들의 모습을 보며 허탈해 한다. 그런 군인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윌라드 일행은 다시 배를 타고 넝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둘렁다리에서 만난 최전방 미군들의 지휘체계도, 질서도 없는 오합지졸 같은 모습에서 느끼게 되는 전장의 실상이 보여주는 혼돈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패배를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기름이 떨어져 움직이지 못하는 여배우들에게 기름 두 통을 주고 수컷들의 배설 욕구을 채우는 윌라드 대위 일행. 자기 차례이니까 빨리 끝내고 나오라고 문을 두드리는 수컷과 아직 끝내지 못한 수컷의 대비되는 실루엣에서 전쟁은 정의가 아닌 지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윌라드는 프랑스 마을에서 잠시 전쟁을 잊은 듯 지루하게 대화가 이어진다. 그들은 베트남이 독립이 되어도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자신들이 개척한 땅에 남겠다는 헛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윌라드는 프랑스 여인과 몸을 섞는다. 두 사람은 사랑해서가 아닌 전쟁에 지친 혹은 메마르고 권태로운 욕망 해소를 위한 헛헛한 교환이었다.

     

     

     

     

       베트남 사람이 탄 배를 검문할 때 비무장인 여인이 상자를 열어보지 못하게 하려고하자 그 안에 베트콩이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총을 쏘는 윌라드 일행. 거기에는 베트콩이 아닌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총을 맞아 부상당한 여인을 후송해야 한다고 부하들이 말하자 여인에게 총을 쏘아 죽여 버리는 윌라드. 그가 벌이는 전쟁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무얼 추구하는 전쟁인가?

     

     

     

     

       천신만고 끝에 커츠 대령이 있는 왕국을 찾은 윌라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지옥이나 다름 없는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시체들 그 안에 신처럼 행사하는 커츠 대령. 군인으로서 승승장구 앞길이 열려있을 만큼 수많은 전과를 올린 그가 왜 험지로 들어와서 원주민들에게 교주처럼 행동하며 그의 왕국을 세웠을까?

     

      그가 윌라드에게 하는 말속에 미국이 베트남과 벌이고 있는 전쟁의 실상과 그가 왜 보편적인 군인으로 살 수 없었는지를 고해성사를 하는 듯하다. 윌라드는 그를 죽이지만 결국 그 또한 한사람의 커츠 대령의 아류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암시해 주고 있는 듯하다

     

     

     

       너는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는가? 타인의 의견으로부터 자유, 게다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를. 너는 수금원에 불과하다. 가게의 점원으로부터 돈을 수금하라는 말과 같은 지시를 받고, 여기에온 것이다.”

     

       “나는 공포를 봤다. 너가 본 공포를. 너에게는 나를 살인마라고 부를 권리는 없다. 나를 죽일 권리는 있다. 하지만, 나를 재판할 권리는 없다. 특수부대에 있을 때였다. 우리들의 주둔지에서 아이들에게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했다. 그런데, 예방 접종을 한 아이들의 팔을 베트콩들이 와서 모조리 잘라 버렸다. 거기에는 잘린 팔들이, 작은 팔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노파처럼. 그리고 그 순간에 나는 다이아몬드로 만든 총알에 이마를 관통당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천재성을 그렇게 할 수 있는 의지력을. 나는 그들이 우리들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과 같은 남자가 10개 사단만 있다면, 우리들은 베트남을 둘러싼 모든 문제들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1979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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