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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기생충 바라보기
    영화. 드리마 2019. 8. 12. 21:21

     

     

    영화 기생충 바라보기

     

               기생충 약 산토닌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은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런저런 소회가 생각났을 것이다. 학교에 기생충 약이 배부되고 모든 학생들이 그 약을 복용해야 했다. 교사는 그 기생충 약을 주며 집에 가서 먹으라는 말이 아이들에게 소귀에 경 읽기라는 걸 진즉 간파하고 있었다. 해서 교탁위에 물이 가득 채워진 노란색 커다란 양은 주전자가 놓이고 아이들은 한 명씩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길로 교사 앞으로 걸어가야 했다. 아이들은 약을 받아 컵의 물을 다 들이키며 몇 번의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만 쓰디쓴 몇 알의 약을 넘길 수 있었다. 아이들이 행여 산토닌을 입안에 감추거나 넘기지 않았을까봐 컵의 물이 비워지면 아이들은 입안 확인을 받고서야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기생충은 당시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박멸해야 할 대상이었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 아이들은 변소에 가면 몇 마리의 기생충이 뱃속에서 나왔는지 확인한 후 선생님에게 알려야 했다.

     

     

     

       영화 기생충은 산토닌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생충이라는 낱말의 의미가 양극화로 빚어진 우리 사회의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그러진 모습일 것이라는 유추를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철저히 망가진 두 가족이 경제적 귀족 계급인 한 가정에 달라붙어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양분을 얻으려다 벌어지는 비극적 코미디이자, 스릴러 혹은 멜로가 뒤엉킨 영화였다. 내게는.

     

       감독은 수직적 구조의 공간 배치를 했다고 했다. 햇볕이 잘 드는 무지 잘 갖추어진 공간, 작은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그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반지하,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가족이 사는 지하, 이렇게 세 가족의 삶이 엉켜있다. 지하. 반지하. 지상의 서로 공간에서 하늘과 지옥만큼이나 격차가 큰 생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공간의 이질적인 모습만큼이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도 기생충과 숙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멀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피자 상자를 접은 돈으로 목에 풀칠을 하며 연명하는 기택(송강호)의 가족, 상류층의 풍요로운 삶을 사는 동익(이선균), 동익의 집을 설계할 때부터 그 집에 살고 있어 그 집 지하실에 남편을 숨겨놓고 사는 가정부 문광(이정은) 가족의 지난한 삶은 실제 우리 사회의 거울이자 자본주의의 심각한 병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생충은 숙주가 살아있어야만 기생하며 살 수 있다. 기택 가족은 넘보아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숙주가 누리는 안락함을 경험하려는 욕심으로 온 가족이 기택의 집에 들어가서 경계심을 풀 때 관객들은 불행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기택의 가족에게 쫓겨난 또 다른 기생충 문광이 남편에게 음식을 주려고 등장하는 순간 두 가족과 숙주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비극이 시작된다. 문광이 기택의 가족에게 죽고, 문광의 남편 근세는 기우를 수석으로 때려눕히고 기정을 죽인다. 충숙은 근세를 죽이고, 기택은 뜬금없이 숙주인 동익을 죽인다. 다승의 생일잔치는 순식간에 죽고 죽이는 피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지하의 기생충은 반지하의 기생충을 죽이고, 반지하의 기생충은 숙주를 죽임으로써 이 영화는 끝난다.

     

       영화 기생충에서 두 가지 상징적인 것이 있었다. 기우 친구가 준 수석이 반지하 집이 물에 잠겼을 때 물에 떠다니고 기우는 그걸 가슴에 안고 다니다가 근세에게 그 돌로 맞아 쓰러진다. 또 근세는 지하에서 모스부호를 이마로 끊임없이 보낸다. 집이 물이 잠긴 긴박한 상황에서도 수석을 들고 나와 결국 그 돌에 쓰러지는데 돌에 뜨는 수석이 상징하는 부에 대한 막연하고 허망한 집념으로 보였고, 모스부호는 막장에 몰린 계층이 세상을 향해 보내는 구조신호로 보였다

     

       그리고 기생충 영화 포스터에서 사람들의 눈이 다 가려져 있다. 그 까닭을 영화를 보고 나서 유추할 수가 있었다. 계층이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분수를 지키지 못해 일어나는 비극을 암시하고 있는 듯했다. 지하, 반지하, 지상의 사람들이 각자의 계층에 합당한 사고를 하지 못함으로써 비극이 일어난다. 그 비극을 포스터에서 보여준 게 아닐까?

     

       이 영화에서 내게 준 의문은 기택이 박사장(동익)을 왜 죽였느냐 하는 것이다. 기택이 동익에게 했던 불편한 질문들에 대한 동익의 핀잔이 살인을 할 만큼 모멸이나 수치감을 준 것은 아니었다. 인디언 역할을 해 달라는 동익의 말에 기택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카메라가 한동안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살인을 저지를 만큼의 필연성은 없었다. 생일잔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보며 기택은 그동안 돈(혹은 자본)이라는 괴물에게 당한 온갖 분하고 억울했던 감정과 자기 가족에게 닥친 벗어날 수 없는 처절한 상황을 바라보며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여 폭발을 한 것이 아닐까? 못 가진 자가 가진 자에게 가지는 막연한 혹은 근원적인 증오심과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서 벌어진 엄청난 비극에 발작하듯 살인을 저지른 건 아닐까? 그가 저지른 살인은 당위성도 필연성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어쩌랴? 못 가진 자들의 가진 자들에 대한 저항은 불시에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이니까. 인류 역사에서 생산 기술의 향상으로 만들어진 풍요가 사람들에게 고르게 분배된 적이 없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편한 동거는 자본주의 사회의 영원한 병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기생충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불행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 모든 자본주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순을 우리의 서정과 감정을 적실하게 화면에 담아냈기 때문에 칸 심사위원들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충분한 조건이 되지 않았을까?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해서 금상첨화지만 수상 여부를 떠나 영화 기생충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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