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水)과 물(物)평행선 눈 2021. 2. 8. 13:10
새벽 산책길에 발아래 느껴지는 흙의 감촉이 축축한 물기로 젖어있다. 며칠 전만 해도 꽁꽁 얼어 미끄럽던 비탈길이 흙 본래의 속살로 돌아와 푹신하고 부드럽다. 수녀의 기도하는 모습처럼 단아한 나무와 잔가지에 물 기운이 넘쳐난다. 욕망과 갈등을 삭인 초연한 속기 없는 물기가 새벽빛으로 따스하다.
물의 느낌.
생명의 원초적인 본질로 형상이 아닌 원질(原質)로써 물이 이성적이라면 형상으로서의 물은 감성적인 것이 아닐까. 본질로서의 물이 삶을 음미하는 철학의 대상이라면 형상으로서의 물은 삶을 노래하는 문학이 아닐까.
숲에서 여름의 겉옷이라면 물은 여름의 속살이다. 무성한 푸른 숲속에서 새하얗게 흘러가는 계곡물을 떠올려 보라. 그 맑음과 여림을 어느 미인의 살갗에 견줄 수 있단 말인가. (정채봉. 물을 생각한다)
나무처럼 크게 자라지도 못하는 풀잎 위에 향기처럼 내린 이슬 한 방울이 풀빛을 더욱 빛나게 하고, 폭우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강을 범람하며 거대한 힘으로 솟구치는 홍수로 변해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물. 깊은 계곡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경이로운 시원함이기도 하고, 바람에 휩쓸린 파도가 뭍으로 오르며 순식간에 인간들의 터전을 쓸어버리기도 하는 물. 그 물의 이면과 성질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때론 논리로 때론 감성으로 물을 본다.
言語도 원래는 얼음(돌) 같은 것이다. 詩人들의 열기가 그 위로 스쳐 갈 때 비로소 민감한 그 言語의 광석들은 물이 된다. 물질에서 생명으로 이동해 가는 네 발을 가진 돌, 날개깃이 달린 광석인 저 물이 되는 것이다. (말. 얼음의 詩學. 이어령)
물은 인간들이 탐욕을 버리고 순수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양수에 떠다니다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인간들은 뭍에 버려지고 물을 그리워하는 원초적 갈증을 간직한 채 태어나는 것이 아닌지? 어머니의 가슴에서 뿌연 물줄기로 갈증을 달래며 터지도록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평생토록 숙명으로 지니고 산다. 대지가 오염되지 않은 품으로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맑은 물을 간직했을 때는 인간들은 언제든지 대지에 엎드려 목을 축이고 물을 찬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들 스스로 대지를 더럽히고 대지의 젖줄에 엎드려 목마름을 달랠 수가 없다. 대지가 어머니의 젖줄일 때 인간들은 물의 영원성과 순결을 믿으며 물처럼 살 수 있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물로 멸하기는 했다지만 그래도 인간들은 뿔 고운 사슴이 연못에 제 모습을 비추며 나르시스에 젖듯 행복할 수 있었다. 물이 인간의 구원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대지의 어느 곳을 흐르는 물도 경배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물은 인간들의 오만으로 물의 속성을 잃고 썩고 있다. 아무도 대지에 흐르는 물을 믿지 못한다. 원초적인 물의 속성을 잃은 물은 이제 재앙이 되어 인간을 위협하기도 한다. 태초의 순수성과 본질을 잃어 갈수록 물을 신뢰할 수 없기에 인간의 물에 대한 그리움은 커 간다. 채울 수 없는, 다가갈 수 없는, 마음 놓고 갈증을 해소할 수 없는 물은 이제 인간의 피안에 쌓이는 함박눈 같은 것이다.
물의 자유, 물의 해방, 물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의 제목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야 할 준엄한 삶의 방식이다. 이것이 물을 찬미하는 우리가 마침내 스스로 물로 흐르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리라. (소설 속의 철학. 눈길과 물길 - 최문희의 「눈길」 이왕주)
스스로 더럽히고 욕되게 하는 인간들은 이제 스스로가 물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그리하여 태초의 맑음을 회복하고 다시는 物이 되지 않아야 한다.
세례의 정화를 위해 쓰이는 물이여 ― 너의 배리가 우리에게서 운명과 무게를 씻어 낼 수 있도록 하라. (김영민. 철학과 상상력, 물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여린 바람에 실려 부피도 알 수 없는 크기로 날리며 안개 같은 빗방울이 우리의 메마른 몸을 축축하게 적시어 오는 오후,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겸손함으로 물과 삶이 하나 되자. 혼탁한 생각과 오염된 몸을 한 꺼풀씩 벗으며 잊혔던 시 한 편을 기억하자. 영혼을 씻은 시인의 언어가 삶이 되고 피가 되어 원시의 깨끗함으로 서자.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物이 아닌 물이 되어 순백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평행선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천 두꺼비의 수난 (0) 2021.02.21 「인터넷 시대와 일본의 침몰」 (0) 2021.02.16 암울한 2020년 코로나 19 아듀(ADIEU) (0) 2020.12.27 베토벤의 ‘패밀리 로맨스’ 환상 (0) 2020.10.22 절대적 미국 문화중심을 깨트린 방탄소년단 (0) 2020.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