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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의 제비 다방
    독서 2022. 1. 27. 14:11

    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십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이상의권태중 처음 부분

     

    일제강점기 이 땅에서 살던 문학인들은 주권을 상실한 엄혹하고

    암울한 시대적 아픔을 커피를 통해 조금이라도 해소했던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록 커피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효석, 전혜린,

    박목월 같은 문인들이 커피를 상당히 즐겼던 것 같다. 그 중에서

    특히 이상은 커피를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상은 다방 제비’, 카페 ‘쯔루’, 다방 식스나인을 운영했다.

    그중 제비다방을 제일 오래 운영(1933-1935)했다. 다방 이름이

    제비였던 까닭은 그가 좋아하는 홍당무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쥘 르나르 때문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제비들은 나에게 그날의 숙제를 준다.

                        (쥘 르나르의 제비’ 첫 부분)

     

    이상은 암울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초현실주의와 허무적인

    사상에 기울어진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상을 천재적인 작가라고 말한다. 아마도 난해한 그의 작품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다방은 지나가는 행인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전면을 유리창으로 만든 파격적인 공간 구성은 제비다방이 가진 특징

    이었다.’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에서

     

    이상의 제비다방에서는 커피만 판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랄로의 음악이 있었다. 제비다방

    그 커피는 현대에서 단순히 분위기와 허영과 혀끝으로 커피를

    마시는 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에서

     

    우리나라는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 중 하나다. 거리에서 조금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일제강점기 커피가 당시의 지식인

    에게 암울한 현실을 견디며 문화와 예술을 위한 창조를 위한 필수품

    이었다면,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직장인들에게는 커피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소확행. 하지만 결코 적지 않은 위로와

    치유를 주는 소울 푸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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