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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십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이상의「권태」중 처음 부분
일제강점기 이 땅에서 살던 문학인들은 주권을 상실한 엄혹하고
암울한 시대적 아픔을 커피를 통해 조금이라도 해소했던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록 커피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효석, 전혜린,
박목월 같은 문인들이 커피를 상당히 즐겼던 것 같다. 그 중에서
특히 이상은 커피를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상은 다방 ‘제비’, 카페 ‘쯔루’, 다방 ‘식스나인’을 운영했다.
그중 제비다방을 제일 오래 운영(1933-1935년)했다. 다방 이름이
‘제비’였던 까닭은 그가 좋아하는 ‘홍당무’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쥘 르나르 때문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제비들은 나에게 그날의 숙제를 준다.
(쥘 르나르의 ‘제비’ 첫 부분)
이상은 암울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초현실주의와 허무적인
사상에 기울어진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상을 천재적인 작가라고 말한다. 아마도 난해한 그의 작품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 다방은 ‘지나가는 행인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전면을 유리창으로 만든 파격적인 공간 구성은 제비다방이 가진 특징
이었다.’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에서
이상의 제비다방에서는 커피만 판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랄로의 음악이 있었다. 제비다방의
그 커피는 현대에서 단순히 분위기와 허영과 혀끝으로 커피를
마시는 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에서
우리나라는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 중 하나다. 거리에서 조금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일제강점기 커피가 당시의 지식인
에게 암울한 현실을 견디며 문화와 예술을 위한 창조를 위한 필수품
이었다면,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직장인들에게는 커피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소확행. 하지만 결코 적지 않은 위로와
치유를 주는 소울 푸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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