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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
    독서 2022. 5. 31. 15:18

     

     

    '7월 초 굉장히 무더울 때, 저녁 무렵에 한 청년이 S

    골목의 세입자에게 빌려 쓰고 있는 골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듯 천천히 K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소설 죄와 벌 은 이렇게 시작된다.'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죄와 벌

    주인공인 로자(라스콜니코프)는 무고한 사람을 도끼로

    쳐죽인 흉악범에 지나지 않는다. 막가파나 지존파처럼.

    그렇지만 이 소설을 모두가 명작이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

    일까? 소설은 윤리 교과서도 아니고 교훈을 위해 쓴 것도

    아니다. 휴학 중인 23세 로자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비범한 사람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방식으로 법률을

    뛰어넘는 권리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비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심리가 전당포 노파와 그 동생을 살해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질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마치 플라톤의 철학자만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망상적 이상적 국가주의와 닮았다.

    라스콜니코프의 이런 망상이 현재 이 땅에서 실현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밖에.

    그의 말을 조금 바꾸어 보자.

     

    권력이나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방식으로 법률을 뛰어넘는 권리가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비범한, 평범한 일반 사람과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라스콜니코프는 우월한 사람에 대한 과대망상적 사고를 하는

    병약하고 병적인 사람이다. 그는 경제 관념이나 사람과의

    관계에도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또 변덕스럽게

    변하는 기분에 따라 행동하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에 대한

    애정조차 변변치 않다.

     

    라스콜니코프 왜 전당포 주인 알리뇨 이바노브나의 동생인

    리자베타 이바노브나까지 잔인하게 살인했을까?

    그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이바노브나를 없애는 것이 정의의 실현

    이라는 미망을 하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빼앗은 돈을 자신을

    위해 써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소냐(소피야)에게 무관심했던

    이유도 비범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다는 오만한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로자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털어놓는다. 비범한 사람에게 자신의

    살인을 고백한 것이 아니고 평범한 소냐에게 고백했다는

    사실, 그건 이미 그가 스스로 비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스스로

    증명한 것이었다.

     

    로자가 두 사람을 죽이고 받은 벌은 고작 8년에 지나지 않는다.

    자수했고, 선행을 했다는 이유였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그 판사는 온갖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을

    죽인 죄에 대한 벌이 겨우 8년이라니!

     

    소설의 제목에서 작가가 말하는 죄에 대한 벌8년의 감옥살이가

    아니라 감옥살이를 하면서 나중에 자신이 비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실망, 좌절, 절망이 아니었을까?

     

    라스콜니코프는 물리적인 벌보다는 정신적으로 자신의

    평범함을 알게 되었을 때의 벌이 그 자신을 절망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경멸하고 조롱했다.

     

    그런 양반이 도끼를 들고 다니다니. 도무지 귀족 나리가 할

    짓이 아니지.”

    네놈은 불신자야! 하느님을 믿지 않잖아.”

    너 같은 놈은 죽여 버리려야 해.”

    이런 경멸과 조롱이야말로 라스콜니코프를 물리적 벌보다

    훨씬 더 괴롭게 했을 것이다.

     

    그는 8년 동안의 형벌보다 그의 존재 이유였던 비범한 인간

    이라는 망상이 깨지는 순간 정말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로자(라스콜니코프)를 구원해준 사람은 한없이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소냐였다.

    그는 울면서 그녀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사랑이 그들을 부활시켰고,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그는 그녀를 생각했다. 자기가 항상 그녀를 괴롭히고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을 떠올렸다.’

    이제 자기가 얼마나 무한한 사랑을 쏟아야만 그녀의 이 모든

    고통을 보상할 수 있을지 알았기 때문이다.’

     

    라스콜니코프는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구원을 받았다.

     

    죄와 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사람을 죽이면 사형)이 아닌

    심리적 고통과 절망 등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

    천착했기 때문에 죄와 벌 이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기서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한 인간이 점차

    새로워지는 이야기이자 점차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점차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 여태껏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아 가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 죄와 벌 은 이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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