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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송 주산지·절곡협곡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그곳에 가면 2024. 10. 12. 15:13

     

           주산지로 향하며 뛰어난 영상미와 생에 대한 고찰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생각했다. 누구나 자신의 생을 살면서도 그 삶과 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되돌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살아온 내 생을 스스로 되돌아보지 못하고 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을 들여다본 후에 비로소 내 삶에 대해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천진난만했던 유년, 부모의 테두리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느끼게 되는 내 삶에 대한 희미한 미래를 바라보는 청소년기, 격정과 흥분의 왕성한 혈기가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고 좌절도 하며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실체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청년기,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고 직장생활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두 어깨에 돌덩이처럼 얹고 살아야 하는 중년 그리고 삶에 대한 회한만 남는 노년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속세와 등진 승()의 세계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승의 세계에서 세속의 욕망을 추스르지 못하고 파계했다가 아내의 탈선에 상처를 받아 살인까지 저지르고 다시 승의 세계로 돌아온 한 사람의 생이 주산지 물 위에 뜬 작은 절에서 벌어진다.

     

     

     

     

     

      승이 아닌 속진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한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한 인간의 고뇌보다 더 적은 좌절과 아픔을 겪고 살아갈 수 있을까? 속이든 승이든 인간의 삶이란 결국 각자가 가진 우주 속에서 모든 걸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숙명이 아닐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만들었던 영화감독은 삶과 생에 대한 깊은 고찰을 보여주는 좋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역시 흔들리는 불안한 인간이라서 배우에 대한 성폭행 혐의를 받아 국내에 있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 후에 들려온 이야기로는 거기에서 되돌아 오지 못하고 코로나19로 사망했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만들 듯이 좋은 삶을 살았으면 더 존경받는 감독이 되었을 텐데. 여배우를 한 인간으로 존중한 것이 아니고 그저 하나의 소모품 정도로 생각했던 것일까? 그의 그런 행동을 전해 들으며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 자신 혹은 우리의 삶과 유리된 가공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에 만족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그 영화가 영국 BBC가 선정한 21세기 100대 영화 안에 든 영화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감독이 영화 속의 생에 대한 성찰처럼 자신의 생과 행동에도 좀 더 성찰하고 살았더라면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주산지에 도착했을 때는 112일(2019)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 무렵이었다. 주산지의 안개 자욱한 모습! 우리의 삶처럼 불투명하고 모호한 모습을 보여줄 그 모습을 기대하고 갔지만 저녁 안개도 다음 날 새벽안개도 볼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기위해 왔다는 것을 이른 새벽부터 주차장을 꽉 메운 차들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산지의 왕버드나무는 예전 사진에서 보던 모습이 아니었다. 저수지의 수위가 높아지며 많은 나무들이 이미 죽었다는 이야기를 민박집 주인에게서 들었다. 긴 세월 온갖 사람들의 생을 지켜보았을 오래되고 묵직한 그래서 그 자태가 역사의 전설처럼 신비스럽고 의연한 채 물속에 잠겨있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런 왕버드나무들은 없었다. 몇 그루 남아있었지만 몰락한 반가(班家)처럼 쇠락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프로 사진사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사진 촬영에 열중하고 있었다.

     

     

     

     

     

       주산지 못 미쳐 바로 옆에 절곡협곡이 있었다. 그 협곡 안으로 들어서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깊은 협곡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옆에 선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 산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려 하니 산 위까지 잡히지가 않는다. 계곡의 맑은 물과 예쁘게 물든 나뭇잎들에 취해 걷는 게 힘들지 않다. 협곡을 지나 정상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준비가 되지 않아 되돌아서기가 무척 아쉬웠다.

     

     

     

     

     

     

     

     

     

     

     

     

     

     

     

     

     

     

     

     

     

     

     

     

     

     

     

     

     

     

     

       돌아오는 길, 길가에서 사과를 팔고 있어서 여덟 바구니를 샀다. 청송을 왔다하니 주변 사람들이 사과 좀 사달라는 부탁을 해서 사다보니 많이 사게 되었다. 버섯도 사고, 참기름도 한 병, 떡도 사먹었다. 어느 지역을 방문해서 길가에서 그 지역 산물을 팔아준다면 지역 사람들로서는 고마운 일일 것이다. 길가에서 떡, 감자, 고구마, 더덕, 버섯 등을 팔고 있는 어머니. 바로 내 어머니들 아닌가? 나 몰라라 하고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작은 물건 한 개라도 팔아주자. 그 지역을 방문하면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민폐를 갚는 작은 정성이라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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