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고픈 늑대 김은지와 교활한 여우 최정(2023 IBK 결승 1국)평행선 눈 2023. 8. 17. 13:28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라는 유행가
처럼 모든 경기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 한국 여자 바둑
에서 최정은 그야말로 지존이다. 우리나라 바둑 순위에서
14위까지 올라간 적도 있고, 지금은 18위이다. 22년 삼성
화재배, 23년 LG배 결승에도 올랐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쟁쟁한 남자 기사들을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간 그 자체로
최정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최정이지만
올해 여자 바둑 리그에서 김은지에게 무기력하게 패하며,
드디어 최정의 시대가 가고 김은지의 시대가 온 게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23 IBK 결승에서 최정과 김은지가 만났다.
바둑 팬들의 기대와 설렘 속에 드디어 1국이 시작되었다.
최정이 초반이 약하고 중후반에 힘을 내는 기사라는 게 중론
인데, 이번에도 초반부터 김은지가 판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초반 최정의 실착) 초반에 끝날 수 있었던 실착
(초반 김은지의 실착) 초반에 끝낼 수 있는 수를 그르친 실착
바둑은 후반으로 접어들었지만, 김은지가 여전히 유리한 국면
이었는데, 우상 귀에서 뻗어 나온 최정의 흑 대마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김은지는 우변 자신의 돌이 먹여치기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손해를 보면서 계속 공격했고,
이걸 알고 있었던 최정은 김은지의 공격을 능청스럽게 받아
주었다. 김은지가 그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판은 최정에게
유리하게 역전되어 있었다.
《후반 승패를 가른 장면》
《후반 승패를 가른 장면》
몇 수 더 두다가 결국 김은지는 돌을 거두었다. 김은지로서는
통한의 한 판이었고, 최정으로서는 아마도 질풍노도와 같이
성장하는 김은지에게 내심 두려움을 느낀 한 판이었지 않았을까?
두 기사의 바둑이 끝났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배고픈 늑대 김은지의 질주와 교활한 여우 최정의 비수를 숨긴 대결’
※ ‘교활한 여우 최정’은 영리함을 넘어서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최정을 일컫는 나의 애칭.
'평행선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영 동피랑 마을과 미륵산 케이블카 (0) 2023.09.23 우체국 앞 소나기 (0) 2023.08.23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멍때리기 (0) 2023.07.24 사람들은 왜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까?사이비 종교와 인간의 나약함 (1) 2023.03.15 여행과 사진 (0) 2022.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