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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새와 나무 2023. 11. 2. 12:05
네이버의 CUE에 2022년 베스트셀러 소설 순위를 물었더니
1위가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이 소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인터넷을 통해서 들었다. 어떤
소설일까 궁금증은 있었지만 사서 읽지는 않았는데
친구가 양산 평산책방에 가는데 책 한 권만 선택하라고
해서 뭘 할까 하다가 이 책을 부탁해서 읽게 되었다.
나중에 이 서점의 이사장이 안도현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흐뭇한 마음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리(나)가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상을
치르는 사이에 아버지에 대한 자신, 주변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었다.
화자 아버지는 여순사건에 가담하여 백운산과 지리산
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위장 자수하여 감옥살이를
하다 출옥한 후, 빨치산 세력을 재건하려다가 다시 감옥에
들어가서 20년 동안 감옥살이하다가 석방되어 고향인 구례
반내골로 들어와 이웃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온
내용이었다.
6.25 전후 우리는 극심한 이념 갈등 속에서 좌우로
나뉘어 서로를 죽이는 적대적인 삶을 살아온 비극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 좌든 우든 어느 한쪽에
가담한 농민들은 사상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처음에는 본의 아니게 나중에는 죽이고 죽는 과정
에서 원수가 된 감정싸움으로 확대된 비극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가족, 친구에 원수를 갚는다는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지극히 사적인 감정싸움의 연장’으로
이어지고 만다. 이렇게 생사가 걸린 극단적인 감정 싸움에서
타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소설에서 빨갱이인
나의 아버지는 우를 증오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박애주의
정신을 가지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다. 평화주의자이고
이념이 아닌 휴머니스트인 삶을 산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버지는 좌익과 우익의 건널 수 없는 원수 사이마저
녹여버린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다.
화자는 아버지가 만능 엔터테인먼트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장례식을 통해 새삼 화자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인간관계를 통해 인간애를 실천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화자가 그런 아버지에게 바치는
추도사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의심 혹은 아쉬움도 짙게 느껴졌다. 특히 베트남
어머니인 17살 소녀와 아버지의 관계 설정은 억지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또 당시 빨치산 활동은 사회주의가 아닌 공산주의적 사상이
주류였던 시대였는데, 나의 아버지는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말과 행동으로 혼돈되어 있었다. 사회적 이익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와 분배와 혁명을 중시하는 공산주의 다소 차이가
있는데, 아버지는 사회주의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자본론,
유물론, 민중 같은 공산주의 언어를 일상에서 사용한다. 작가가 그걸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또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자본주의적인 삶을
산다. 주변 사람이 아프면 빨치산 활동과 관계가 있는
전대병원 내과 의사에게 전화해서 치료받게 한다. 공정한
차례와 순서를 무시하는 특혜를 제공한다. 서민들이
그렇게 싫어하고 혐오하는 이른바 병원이나
검찰 등 권력을 가진 사람과 친분을 통해 줄서기를 하지
않는 병폐를 저지른다.
또 아버지가 얼굴을 다쳤는데 아들을 자처하는 학수가
50만 원을 가지고 다짜고짜 노인정으로 가서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며 노인들에게 협박과 위협을 하고 돈까지 살포
(소설에서는 쾌척이라고 표현)한다. 마치
철없는 부모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에 얼굴을 다치고
왔을 때 원인을 묻지도 않고 교실에 쫓아가 반 아이들을
위협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데 아버지는 말리지
않고, 오히려 학수를 처음으로 집으로 데려와 밥까지 같이
먹는다. 여기에 화자까지 동조하며 자식인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좌우 사상과 이념 대립으로 많은 사람이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당시의 참상으로 인한 아픔과
슬픔은 다 정제해버리고, 남의 아픔과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주는 기질을 가진 아버지를
존경과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이 소설은 참 따뜻하다. 피비린내와 폭력이 난무했던
이념의 대립에서 건져올린 사랑의 메시지라고 할까? 그 점이
이 소설이 장점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을 내 관점에서 바라보면 현실적인 삶의
문제라기보다는 따뜻한 동화 같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이 소설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은 아리가 아버지의
유골을 여기저기에 새 먹이주듯 뿌리는 행동이었다.
이 소설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존경의 추도사 같은
내용인데 아버지의 유골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여기저기 뿌리는 행동은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었다.
동화 청개구리 이야기 생각났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무 데나 뿌려버리라고 평소 말했다지만 이건 아버지의
진심이 아니라는 건 학수의 행동에 화를 내기는커녕
처음으로 집으로 데려와 밥까지 먹이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리의 아버지도 다른 아버지와 다름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회주의자라는 점이다.
아버지의 유골을 그렇게 여기저기 뿌리는 행동은 죽은
아버지를 마지막 보내며 딸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예의와 존경을 저버리는, 이 소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뒤집어버리는 행동 같아서 무척 아쉬웠다.
「82년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몰이할 때 나는 의아심을 가졌었다. 그때처럼은
아니지만 이 소설을 읽은 후에도 그런 점들로 인해 다소 아쉬움이
드리우는 걸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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