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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 불명산에 숨은 화암사
    그곳에 가면 2024. 3. 31. 13:58

     

    전주 가까이 갔을 때부터 하늘에 먹장구름이 덮이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절에 가지도 못하고 되돌아서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비는 내렸다 멈추었다를 반복하더니 화암사 근처에

    가자 비가 멈추었다.

     

    화암사 주차장을 지나 차는 왼쪽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오른다.

    이십여 년 전에 왔을 때는 없던 길이 새로 낸 것 같았다. 길이 좁아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을 하고 있는데 운전하는

    사람은 천하태평이다. 가파르고 좁은 길을 한참을 올라 정상에

    오르더니 내리막이다. 내리막길을 따라 조심스레 내려가니까 절이

    보인다. 절 뒤에 주차장이 있었다.

     

     

    절 앞으로 가면서 보니 작은 계곡을 끼고 오솔길이 아래로 이어지고.

    그 아래 철계단이 끝이 조금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른쪽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면 계단이 절로 이어진다. 예전 그 길을 따라

    절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절 앞에 서면 특이하게 우화루 아래 건물을 바치고 있는 기둥 뒤쪽에

    시골 담처럼 돌이 쌓여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하고 감탄할

    만큼 작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절 건물이 이마를 맞대고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불명산이 사방으로 절을 둘러싸고 있어 병풍을 두른

    듯한데, 앞으로 작은 틈을 내주어 절을 오를 수 있는 작은 길이 있다.

    그런 자연환경을 거스른 듯 절 뒤쪽으로 길을 내어 자동차가 절

    뒤까지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서 산에 생채기를 냈다.

    스님들도 이제는 청빈의 삶이 아닌 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걸 보면 속과 승이 무너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안도현 시인이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라고 했던 마지막 시어가 무색하게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화암사는 아직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 절로

    산속에 숨어 중생들이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꼭꼭 숨어 있었다.

     

    (하앙식 지붕) 처마가 길게 튀어나는 방식 

     

    김영일 님의

    동무야 오는 날

    같이 보겠네

    라는 시가 생각나는 절이기도 하다.

     

    이 중 극락전은 1425년에 성달생의 시주로 건립했으며, 중국 남조시대(南朝時代)

    유행하던 하앙식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이다. 하앙식이란 지붕의 하중을

    분산하고자 기둥과 지붕 사이에 끼운 긴 서까래를 처마와 나란히 경사지게 놓고

    일반 지붕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늘여 뺀 건축 방식을 말한다.’

     

     

                   

    화암사

                                            회색갈피

     

    화암사 좁은 마당에 들어섰을 때

    세월은 멈춰 선 듯

    괭이 박힌 늙은 기둥을 안은 묵적루

    한지로 눈 가린 헐렁한 문짝

    튀어 올라 어긋난 우화루 마룻장

    길게 늘어져 마당을 바라보는 처마

    머리를 맞댄 지붕 사이를 비집고

    작은 마당으로 뛰어든 불명산

    그래도 내가 설 수 있는 마당 한 켠

    내주고 소리 없이 미소 지으며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속에

    화암사가 숨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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