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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언
    단편 2024. 4. 7. 16:00

     

    , 친구 좋다는 게 뭔데? 친구가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하니까 커피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데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냐?”

    세면기 수도꼭지에서 물이 조금씩 세는데 손을 보지 못해서 오늘은 고치려고 생각하고 수도꼭지를 사러 막 나가려고 하는데 도신이 전화를 했다.

     

    운전도 못 해?”

    할 수 있으면 전화하겠어? 네 놈 잔소리라면 머리가 아픈데.”

    커피믹스 마시면 안 되겠냐?”

    친구야, 부탁한다.”

     

    커피 사다 주고 오면서 일을 보려고 도신이 알려준 카페로 갔다. 오십쯤 돼 보이는 주인 여자가 책을 읽고 있다가 일어서며 웃었다.

    도신이 아세요?”

    사장이 주방으로 가며 쿡쿡 웃었다.

    왜 웃으세요?”

    도신 그분한테 당하셨군요?”

    등에 둔탁하고 무거운 돌이 떨어지는 듯 안 좋은 느낌이 왔다.

    ? 무슨 말씀……

    어제 전화로 커피를 배달해 달라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여기는 다방이 아니라고 탁 쏘아붙였어요.”

    당연히 그랬겠지요.”

    무안을 당하고도 다시 간절히 부탁해요. 왜 와서 마시지 않느냐고 하니까 올 수가 없는 사정인데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다고요.”

    아는 사이에 끝까지 거절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왕복 이십 리나 되는 곳을 쉽게 갈 수도 없었는데 20만 원을 주겠대요.”

    ? 아니 미친놈이. 사람을 뭐로 보고.”

    이십은 안 되고 사십 만원이면 배달해 주겠다고 했지요. 설마 아니겠지 생각하고요.”

    나는 갑자기 딸꾹질이 나왔다.

    커피 한잔에 사십만 원을 내겠다고 해요?”

    통장번호 알려달라고 하더니 바로 입금했어요. 덤터기를 쓴 건지 횡재를 한 것인지 아리송했지만, 카페라테 두 잔이랑 빵도 조금 가져갔어요.”

    발이 아파서 못 움직인다고 하던데요.”

    아니요. 멀쩡했어요. 무슨 사정이 있어 못 오는지 따질 시간도 없고, 가게도 비어 있어서 그냥 왔어요.”

     

    멀쩡했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화가 치미는 것을 참고 도신이 집으로 갔다. 친구는 몸은 그늘에 있고 발만 햇볕에 내놓은 채로 죽은 듯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놈의 오만하고 게을러빠진 발을 걷어찼다. 도신은 아플 텐데 내색도 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아냐 먹어라. 발이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바쁜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들이니 고소하냐?”

    발이 뭔 죄가 있다고. 내가 문제지.”

    문제는 무슨? 커피 안 마시면 죽는 것도 아니고 왜 난리야?”

    너 시지프스가 신을 속인 죄로 아크로코린토스산에서 바위를 영원히 끌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 것 알지? 시즈프스는 반항을 못 했지만, 나는 반항하는 중이다. 됐냐?”

    너 지금 뭔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냐? 반항하든, 저항하든 상관없지만, 나는 왜 끌어들여서 괴롭히냐?”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한 번 도와주면 좋지. 나중에 내가 덤으로 원수 갚을 테니 용서해주라.”

    나는 도신의 능청인지, 넉살인지 알 수 없는 말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렇지만 시즈프스가 산 위로 끊임없이 바위를 올리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 회사와 집을 오가는 반복을 하는 게 그와 다름이 없기는 했다. 도신이 일탈에 나를 끌어들인 것이 밉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그래 너 참 잘 났다. 나 갈란다.”

    갈 때 가더라도 나랑 커피나 마시고 가. 내일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내일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 종교인의 방언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도신이 가리키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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